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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석 Dec 30. 2018

이상형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아시는지?

프랑스의 저명한 작가이자 극작가인 프랑수아즈 사강의 작품이다. 그녀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같은 느낌일 것이다. 이 소설을 펼쳐 들면 왠지 모르게 누구도 알 수 없는 동네 파스타집을 떠올리게 한다. 그곳에는 아주 딱 들어맞는 맞춤양복처럼 나의 기호에 걸맞은 기름기가 둘러져 있다. 그래서 감탄할 수밖에 없는, 간이 잘 배긴 파스타를 혀에 올리듯 읽히고 마는 것이다.


이 소설에 긴밀한 감정을 품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주인공 폴과 시몽의 관계 때문이었다. 요즘에서는 꽤 흔해졌지만 당시에는 퍽 흥미로울 법한 연상연하 커플의 이야기다. 물론 폴이 연상이고 시몽이 연하다. 이름 때문에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폴이 여성이고 시몽이 남성이다. 그들 사이에는 바다가 존재한다. 14년이라는 바다. 그러나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수심(水深) 따위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수면(水面) 같은 건 거뜬히 넘어버리면 되는 것이다. 관계의 수심은 지극히도 상대적일 뿐이니까. 고로 이 작품은 얼마 전에 방영해 크게 성공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라던가, 많은 남녀 사이를 엉킨 라면처럼 배배 직조시켜준 “라면 먹고 갈래요?”의 <봄날은 간다>**와 같은 작품의 원조 격이라고 볼 수 있다.


거두절미하고 예로부터 나는 이런 이야기에 고혹적인 흥미를 느끼곤 했다. 순전히 안경을 낀 남성에게 매력을 느낀다던가 쌍꺼풀이 없는 여인에게 자못 눈길이 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고 내가 연상의 여인을 만나면 어떻게 해보겠다거나, 그녀들과 필히 연인이 되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흐음, 매력적인 여성이군.’하고 때가 되면 “즐거웠습니다.”하고 헤어질 뿐이다. 내가 연상의 여인에게 매력을 느낀다고 한들 지구온난화가 급작스럽게 악화된다거나 맥도날드가 사라질 일은 없다. 그러니 이상하게 바라보는 눈빛은 살짝 접어뒀으면 한다. 그저 그런 것이다. 시몽이 14살이나 많은 폴에게 매력을 느꼈던 것과 같이 자연스로운 감정이다.


가령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졸업> 같은 작품을 보면 나는 정신이 혼미해져버리고 만다. 젊은 더스틴을 손쉽게 쥐었다 폈다 하는 앤 밴크로프트는 결코 매력적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젊은 딸과 도망치는 엔딩 시퀀스는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도 그렇다. <상실의 시대>의 나오코나 미도리보다는 중후한 레이코에게, <스푸트니크의 연인>의 스미레보다는 원숙한 뮤에게 더 크게 호감을 느끼는 것이다. 뭐, 그녀들 모두가 매력적이라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지만.


이러쿵저러쿵 얘기해보지만, 이상형이란 하나의 관념으로 남을 때 자신의 역할을 적확하게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실체화시키고자 하는 바람부터 불행은 스멀스멀 찾아온다. 100퍼센트의 이상형 같은 건 지구 어디에도 없다. 화성쯤 가면 있을지도 모르겠다. 뭐, 그래도 가시겠다면 응원은 하겠습니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나는 내 이상형과 100퍼센트 부합한 자가 아니라면 결코 연애 따위 하지 않겠어요. 흥!”이라는 말은 “나는 257칼로리의 호밀로 도우를 만들어 몸에는 좋으면서도 고기와 페퍼로니가 골고루 퍼져있어 감칠맛을 놓치지 않는 동시에, 야채 토핑이 듬뿍 들어가 느끼한 맛을 잡아주고 입안에 생기를 풍부하게 만들어주며, 아메리칸 치즈와 모차렐라 치즈가 가득해 피자 고유의 맛을 살려줄 수 있는 12920원짜리 피자가 아니라면 그 어느 것도 먹지 않겠어요. 흥!”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어후 숨차).


이상형의 순기능은 명확한 대상을 포함시키는 것이 아닌 제외하는 것으로부터 구현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라는 제약은 작은 어항 속에서 산초를 찾아 헤매는 물고기처럼, 인연의 대상을 현저히 감소시키기만 할 뿐이다. 조금만 사고를 뒤틀어보자. ‘~만은 결코 아닌 사람’이라는 전제를 안고 살아가다 보면 보다 유하게 삶을 누진해갈 수 있다. 이를테면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보다는 ‘차가 없으면 가까운 슈퍼도 나가지 않을 정도의 게으른 사람만 아니면 된다.’라는 생각이 한결 더 낫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강의 어록 중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유명한 언구(言句)가 있다. 그녀는 1992년 마약 복용 혐의로 체포될 때 그렇게 말했다. 응당 그럴 권리를 품는다. 물론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있다. 이러쿵저러쿵 얘기했지만 사실 이상형 같은 건 맘대로 생각하길 바란다. 이상형은 이상형으로 두면 될 뿐이다. 지구온난화는 지구온난화대로, 맥도날드는 맥도날드대로, 그들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으니 말이다.


글을 쓰는 지금, 옆에선 브람스의 음악이 흐르고 있다. 연상의 여인을 생각하면 가을비 자욱한 날의 홍차 같은 느긋함이 그려진다. 청아한 연상의 여인과 함께 누구도 모르는 동네 파스타집에 간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하고 또 생각한다. 파스타와 홍차라니 정말 제멋대로 매력적이다. 사실 나는 브람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자칫 아름다운 얼음의 결정(結晶) 같은 눈빛으로 “브람스를 좋아하니?”하고 묻는다면 나는 또 정신이 혼미해져 “무엇 보다요.”하고 대답할 것만 같다.


* jtbc에서 2018.03.30. ~ 2018.05.19. 기간 동안 방영했던 미니시리즈 드라마.

** 2001년에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작품. 극 중 등장하는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는 4살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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