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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석 Jan 17. 2019

검정치마에 대해

검정치마를 좋아한다. 이렇게 글을 시작하니 “아니 젊은 양반, 첫 문장부터 관심도 없는 페티시즘적 발언이오?”하고 계시겠지만, 오해 마시길. 이것은 가수 검정치마에 관한 얘기다.


본명은 조휴일(일요일에 태어나서 휴일이다). 2008년에 <201>이란 앨범으로 데뷔한 가수이다. 대표곡으로는 ‘Everything’과 ‘좋아해줘’ ‘나랑 아니면’쯤이 있다. 이렇게 성급히 소개하는 건, 검정치마 페티시스트로 몰려, 나와 약속만 잡히면 황급히 바지를 찾을 사람들을 배려하기 때문이다. 에헴. 무명이라고 하기에는 두터운 팬층이 눈에 걸리고, 유명이라고 하기에는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으음. 이럴 땐 뭐라고 불러야 할까. 불투명(名)이라고 불러야 할까.


내가 검정치마를 처음 접한 것은 1집에 수록된 ‘강아지’라는 노래였다. 5살쯤 먹은 듯한 개 한 마리의 건강한 ‘그르렁’과 시작되는 이 음악은 청취자에 고막을 꽉 쥐는 강력한 힘을 가졌다. 당시에는 ‘검정치마라는 작자, 꽤나 신기하군.’하고 넘겼는데, 몇 년 후에 그―검정치마라는 작자―가 3집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충 부르는 듯 울림 있는 목소리가 묘한 감정으로 번역돼 내 가슴 안에 들어왔다. 그 울림은 꿉꿉하지만, 중독성 있는 냄새의 오래된 지하실을 연상케 했다.


노래를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검정치마의 음악은 쉬운 듯 복잡한 어휘를 구사한다. 평범한 듯 특이한 음색을 지녔고, 퇴폐적이지만 굉장히 순수하다. 그러나, 가장 큰 특징은 아무래도 세월과 추억에 얽매이지 않는 것 아닐까. 마음 한 구석에 그리운 그대가 없더라도, 누군가가 떠오르게 하는 재주. 해서, 중요한 약속이 있거나 급한 일이 있는 날에는 그의 음악을 피한다. 어느 거리를 걸으며 검정치마의 노래에 집중할 때면, 범 잡을 수 없는 그리움이 엄습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과를 마치고 아름다운 낙조를 마주할 때면 그의 음악이 훌쩍 떠오른다. 겨울 붕어빵이나 여름 수박처럼 삶의 도처에 머물러 있는 즐거움이다. 그럴 때면 손을 데워주는 아메리카노나 맥주라도 한 캔 구입해 넓은 하늘을 가진 곳으로 걸어가고 싶다. 버스를 타는 것도 괜찮겠다. 필경 ‘혜야’ 혹은 ‘Hollywood’의 가사처럼 애인을 멀리 떠나보낸 듯 아득해지거나, 붉게 사라져 가는 낙조 속으로 몸을 내던지고 싶을 것이다.


“그의 음악은 내게 잠깐 손을 펼쳐보라며, 손 틈 사이로 삐져나간 세월을 한가득 쥐어주었다.” 검정치마를 소개할 때면 항상 이렇게 말한다. 그 세월은 평범한 듯 특별하고, 퇴폐적이지만 순수한 시간들이다. 그런 불투명한 모호성을 사랑한다. 물론 이런 경험은 조휴일의 근사한 생애를 답습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는 나의 감정이 살며시 옆에 눌러앉는데 태연한 사람일 테니까. 검정치마를 처음 접하려거든, 모쪼록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시길. “음, 검정치마라는 작자, 꽤 괜찮은 걸?”하는 순간, 당신은 벌써 미묘한 감정에 물들고 있는 겁니다.


추신. 그나저나 ‘검정치마’라는 이름은 그저 어감이 좋아서 지었다고 하네요. 조휴일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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