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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석 Feb 21. 2019

터키일기_두 번째 날

잊을 수 없는 베이징의 향

  해당 글은 2020년 12월에 발매된 『엎어진 영화, 엎질러진 터키』의 일부 에피소드입니다. 전문은 제목에 연결된 링크를 통해 구입하여 읽으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것은 조식 때문이었다고 생각한 두 번째 날이었다.


  영어조차 제대로 통하지 않던 환승호텔에서 어렵사리 조식이 있다는 정보(오전 6시에서 9시까지)를 접했다. 여행의 시작을 기념하여 가볍게 축배를 들고(캔맥주 8개), 심심했던 입을 살짝 달래고(중국판 신라면 3컵), 철저하게 알람까지 설정한 후(내 휴대전화만 오전 8시 30분으로), 얼른(오전 5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0시 30분에 일어났다. 그렇다. 학수고대하던 중국에서의 첫 식사는 고스란히 물 건너간 것이다. 온갖 상식과 가정을 동원해보지만, 대체 왜 늦잠을 잤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그렇지 않나요?


  에헴···(시선을 회피한다).


  조식을 건너뛴 우리는 어렵게 공항으로 가는 셔틀버스 정보를 알아냈다. 시간을 잘못 안 건지, 우리가 놓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래저래 사정이 생겨 1시간을 더 기다리게 됐다. 배도 굶주렸는데 잘 됐다 싶어,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한자 말고는 어떤 문자도 찾아볼 수 없는 식당이었다. 한평생 이름도 들어볼 일 없는 시골의 소도시면 모르겠다만, 외국인이 넘쳐나는 환승호텔 근처가 이렇다는 건 꽤 자연스럽지 못하다. 식사는 해야 하니 보디랭귀지는 물론, 온갖 표현을 동원해 결국 ‘쓰리 누들’을 주문했다. 이내 면이 나왔고, 공복으로 얼룩진 나는 가능한 크게 면을 집어 들었다.


  입으로 넣는 순간, 다른 사람은 들리지 않는 아우성이 내게는 들리는 것 같았다. 면은 강한 향을 내뿜으며 "저는 밀가루입니다! 절대로 오곡이나 다른 재료가 아닙니다!" 하고 소리쳤다. 꾸역꾸역 먹으려고 했지만, 대륙만큼이나 넓은 주방장의 인심에 요리는 사라질 기미를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O는 물론이고, 평소 같으면 마른 장작도 씹어 먹는 Y조차 버거워 보였다. 나는 언젠가 인터넷 기사에서 본 ‘중국에서는 음식을 남기는 것이 예의’라는 말을 두 사람에게 알려주었다.


  그제야 둘의 표정은 정오의 망망대해처럼 환하게 빛났다.


  식사를 마치고 천안문 광장으로 넘어간 것은 오후 다섯 시 무렵의 일이다. 광활한 광장과 저만치 걸려있는 모택동(毛澤東)의 사진,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웅장함을 간직한 수많은 건물이 정의할 수 없는 규칙으로 변주를 이루었다. 넓기는 얼마나 넓은지, 마치 아이맥스 A열에 앉은 듯 상하좌우를 꼼꼼히 훑어봐야 광장 전체가 어렴풋이 눈에 담겼다. 민주사회와는 확연히 다른 결을 나는 처음으로 느꼈다. 까딱 잘못하면 공안이 빠르게 나를 둘러싸고, 베이징 교외의 비밀 취조실로 끌고 갈 것 같았기 때문―은 조금 과장이고, 주변에 괜찮은 식당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몇 장 남긴 우리는 즉각 지하철을 타고 베이징 번화가의 중심, 왕푸징으로 이동했다.


  개찰구를 빠져나온 우리는 지하철과 연결된 어느 쇼핑몰로 향했다. 처음엔 야시장이 목적이었으나, 너무 배가 고팠던 나머지 일단 푸드 코트에서 허기를 달래기로 했다. 수많은 식당을 지나쳐 우리가 들어간 곳은 ‘중국식 짜장면집'.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들어간 곳이었는데, 나올 때는 전적으로 ‘두려움’만 남게 됐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부터 중국 요리 특유의 향이 콧속으로 들어왔다. 마치 비염 치료를 할 때처럼 찌릿했다. 되새겨보면, 나는 그때 나가자는 말을 해야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둘은 이미 주문을 마친 상태였다. 내가 주문한 것은 기본 메뉴인 중국식 짜장면이었는데, 놀라울 정도로 내가 맡았던 향과 같은 맛이 났다. 공개되지 않은 중국의 신기술이 향을 형상화해서 면처럼 가늘게 잘라놓은 게 아닌가, 하고 의심이 갈 정도였다.


  지불한 금액이 아까워 깨작거렸지만, 아깝다고 될 노릇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꽤 먹을만하다고 느꼈는지, 어느새 그릇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절반 이상 남은 그릇을 둘 사이로 밀어내며 웃음 아닌 웃음을 지었다. “형들 내 것도 먹어.” 내 안에 소설가가 있다면 ‘중국 요리는 나와 기질적으로 안 맞는가?’라는 문장을 적었고, ‘기질적으로 안 맞는다’라고 편집자는 고쳤다. 참으로 유능한 편집자다.


  그렇지만, 이런 나도 맛있게 먹은 중국요리가 있다. 군인과 인파들(그리고 모택동의 사진)로 가득한 천안문 광장에서 유독 한산한 곳이 있었다. 천안문 외곽에 위치한 노점상이었다. 여공안 한 명이 음료수를 고르고 있었다. 몇 초 후 남공안 한 명도 근처로 다가왔다. 그는 "늘 마시던 걸로."와 같은 말투로 무덤덤하게 소시지를 주문했고, 둘은 짧은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여전히 남자는 시니컬한 말투를 잃지 않았다.


  약 15초쯤이 지났을까. 전개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남공안은 여공안의 손에 소시지를 쥐여주고 저 멀리 달아나버렸다. "바빠도 먹으면서 일해!"라는 말과 함께(물론, 뉘앙스로 추측한 것이다).  영화 <클래식>에 나올 법한 청초한 장면이었다. 두 사람의 가녀린 웃음소리, 남녀가 만들어내는 묘한 기류, 미묘하게 떨리는 중국어 성조가 노점상 주위를 4월의 중학교 같은 분위기로 만들었다. 두 공안의 서투른 애정행각을 목도한 나는 곧바로 노점상으로 향했다. 좋은 감정을 가진 이에게 쥐여줄 음식이라면, 맛은 보장돼 있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하물며, 어린이 입맛인 나는 소시지라면 사족을 못 쓰니까.


  예상은 적중.


  우선, 씹는 순간 터져 나오는 육즙에 놀랐다. 이어서 달콤함과 짭조름함이 규칙적으로 혀를 자극했고, 순식간에 식도로 사라진 소시지는 잠을 줄이며 읽었던 『상실의 시대』처럼 아쉬움만 남겼다. '사랑을 표현하려면 이 정도 음식은 돼야 하는구나.' 하고 절로 납득이 가는 맛이었다. 여운이 가시지 않았던 나는 왕푸징 야시장에서도 이 소시지를 주문했다. 모두가 최고라고 칭하는 독일 소시지를 나는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내 인생에 이보다 맛있는 소시지를 먹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아니 확신이 든다. 보름 후 경유를 할 때 기필코 한 번 더 사 먹을 것이다.


  갑자기 떠오른 말이지만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라는 속담을 곧잘 이해했다. 역시, 여행은 뭐가 됐든 교훈을 준다. 그러면 당신은 물을지도 모른다. 베이징 소시지를 그토록 칭찬했으면서 왜 딴소리냐고. 기다렸다는 듯 나는 대답한다. 터키행 비행기서 받은 치킨라이스는 역시나 향신료 향이 가득했기 때문이라고.


  남은 날은 12일, 2019년 2월 18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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