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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사이

나의 반려 가방 이야기

가방이 내게 가르쳐준, ‘좋은 것’의 진짜 의미

by 헬시기버

#나의 반려 가방


오늘도 출근길에 익숙한 가방을 어깨에 멨다.

레스포색에서 산 클래식 호보백.

야자수와 기린 무늬가 수 놓인 천 가방은

낙하산 천으로 만들어져 가볍고, 질기다.

그렇게 함께한 세월이 어느새 10년을 훌쩍 넘었다.


엄마는 그 가방을 볼 때마다

딸이 아껴서 가방을 안 산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돈이 없어서 그래? 좋은 것 좀 메고 다녀라." 하신다.


하지만 사실 내 옷장엔

더 비싼 가방들이 여럿 있다.


#결혼 예물 가방

얼마 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다 문득 생각났다.

결혼 예물로 받은 그 가방.

두세 번 들고 다녔을까.


남편이 가방을 사 줄 때 나는 말했다.

"비싼 가방은 필요 없어요. 가벼운 게 좋아요."


하지만 남편은 여자는 가방을 좋아한다는 믿음으로

비싼 매장에 들어가 악어가죽 가방을 사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핑크빛에 핸드백보다는 조금 큰 가방.

거울 앞에선 예뻤지만 들면 너무 무거웠다.


그리고 사실,

그런 가방을 들고 갈 곳도 없었다.


결국 그 가방은

10년 넘게 수납함 안에 잠들어 있다.

이사할 때마다 함께 옮겨 다녔지만

한 번도 햇빛을 보지 못했다.


이제는 보내야 할 때가 된 것 같지만,

남편이 의미 있게 사 준 물건이라

쉽게 놓을 수가 없다.


#첫 명품 가방


결혼 선물로 받은 가방 외에도

내게는 반려 가방보다 훨씬 비싼 가방들이 있다.


싱가포르에서 들어와 한때 유행했던,

남편이 사준 주황색 가방.


짐 정리하던 동료가 건네준 가방,

부장님이 물려주신 명품 가방.


그리고 절친이 남편 몰래

생일 선물로 건네준 가장 비싼 명품 가방까지.


"결혼식 갈 때 들고 가." 하며 챙겨준 그 가방은

예식장에서는 빛났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사진 찍을 때마다 가방에 시선이 꽂히고,

뷔페에서는 음식보다 가방이 먼저 걱정됐다.


'혹시 누가 가져가면 어쩌지.'


그때 깨달았다.

이 가방은 나를 위한 게 아니었다는 걸.


남들이 말하는 '좋은 가방'은

내게 '필요 없는 가방'이었고,

값비싼 '명품 가방'은

오히려 들고 다니기 '무서운 가방'이었다.


#새로운 반려 가방


이런 내게 새로운 반려 가방이 생겼다.


얼마 전 큰 형님이 물으셨다.

"동서, 이 가방 필요해? 선물 받았는데 내게는 필요가 없어서."


보내주신 사진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핑크색이 들어간,

미니 천 가방이었다.

좋다고 해서 받았고,

처음엔 딸에게 주었다.


그런데 몇 번 들어보니

가볍고 좋아서 출근길에도, 약속 자리에도 들고 다니게 됐다.


그러다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교회에서도

같은 가방을 든 사람을 여럿 보았다.

신기해서 찾아보니 미국의 한 마트 장바구니였다.


'한국 사람에서 미국 마트 장바구니를 이렇게나 많이 들고 다니다니.'

웃음이 났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떤가.

내게 찰떡같이 잘 맞는다면,

그게 바로 좋은 가방이지.


#이젠 보내야할 때


새로운 반려 가방을 만나고 나서

가방에 대한 내 생각은 확실해졌다.


남들이 부러워할 가방보다,

비싼 명품보다,

가볍고 내 눈에 예쁜 가방.

그게 내게 '좋은 가방'이라는 것을.


이제는 보내야 할 시간이다.

10년 넘게 어두운 곳에 있던 가방,

혹시나 해서 고이 모셔뒀던 가방들을

이젠 떠나보내야겠다.


내겐 의미가 소중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더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정리하며

조금이라도 돈이 생긴다면

좋은 곳으로 흘려보내야지.


그리고 내 삶도

가방을 고르듯

가볍고 단단하게,

내게 꼭 맞는 것으로 채워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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