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다.
얼마 전, 늘 성실하던 한 학생이 조금 늦게 프린트 검사를 받으러 왔다. 평소라면 제시간에 맞춰 오던 학생이라 무슨 일인가 싶어 물어보았다.
“요즘 예전보다 조금 늦는 것 같아.”
“아, 저 수리 논술 준비하느라 좀 소홀해진 것 같아요.”
“그래? 수리 논술은 수학을 꽤 잘해야 하는데 괜찮아?”
“다른 과목은 성적이 잘 안 나오지만 수학은 그래도 1등급이 나와서요.”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공부에 큰 관심이 없어 성적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겨울방학부터 마음을 잡고 아침 9시부터 밤까지 앉아 공부하자 성적이 눈에 띄게 올랐다. 스스로도 “이렇게까지 오래 공부한 건 처음이었는데, 막상 하니 성적이 오르더라구요. 그러니 대학 욕심도 생겼어요.”라며 웃었다.
수리 논술을 준비하게 된 건 부모님의 조언 덕분이었다. 고3인 누나와 중2 동생까지, 세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은 첫째의 입시를 앞두고 자연스레 진학에 관심을 가지시고 다양한 정보를 찾아보신 것 같았다.
누나와 본인은 영어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부모님은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동생은 미리 챙겨주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생이 제일 잘하는 것 같아요.”라며 웃어 보였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압박하신 건 아니었다.
학생은 “혼자였다면 눈앞밖에 못 봤을 텐데, 부모님이 말씀해주셔서 가능했어요.”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의 대화는 부모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아이의 세상은 늘 지금, 여기다.
눈앞의 일밖에 보지 못한다.
학교생활 속에서 그 너머를 바라볼 기회는 흔치 않다. 하지만 부모가 조금 더 멀리 바라보고, 세상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면 아이는 직접 보지 못해도 어렴풋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이 길만 가야 한다”는 강요가 아니라, “이 길로 가면 이런 모습이 있고, 저 길로 가면 또 다른 모습이 있더라.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는 제안이야말로 아이를 성장하게 한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면 책임감을 갖고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학생도 남들과 다른 길을 택한 데 대한 불안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풀어내는 태도 속에서 잘 해낼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앞으로의 과정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