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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사이

빨간 모자 어머니와 아들

새벽 러닝에서 깨닫는 것들

by 헬시기버

새벽 달리기가 좋아졌다.


예전에는 늘 러닝머신 위에서만 달렸다. 기계가 일정한 속도를 맞춰주니 편안하긴 했지만, 어쩐지 단조롭고 답답했다. 그런데 땅을 직접 딛고 바람을 마주하며 달리기 시작하면서, 달리기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새벽 여섯 시.


늘 헬스장에서 보던 낯익은 얼굴들이 아니라, 산책하는 이들, 출근길에 오른 이들, 그리고 운동하는 이들을 마주한다. 아파트 단지 구석에서 발목과 무릎을 돌리고, 허리를 천천히 풀어낸다. 그리고 스마트워치를 켜고 달리기를 시작한다.


출근길에 서둘러 걷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면 부지런한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이 시간에 달릴 수 있는 여유에 감사하게 된다. 동시에 운동할 틈조차 없이 일터로 향하는 그들의 발걸음이 안쓰럽게 느껴져 마음 한편이 무거워진다.


혼자 걷는 이들의 단단한 리듬에서는 성실함을, 함께 걷는 부부의 모습에서는 다정한 온기를 느낀다. 강아지와 나란히 걷는 이들을 보면 반려견이 주인의 건강을 지탱해 주는 작은 효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새벽에 깬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며 걷는 부모를 마주칠 때면,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하며 지난 시간이 생각난다.


달리다 보면 이 새벽 풍경은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이어진다. 수많은 인물이 스쳐 지나가고, 그 사이로 오래 남는 장면 하나가 있다. 바로 빨간 모자를 쓴 어머니와, 그 손을 꼭 잡고 걷는 아들의 모습이다.


빨간 모자를 쓰고 지팡이에 의지하며 절뚝이는 어머니. 그 옆에서 묵묵히 손을 잡고 걷는, 중년의 아들.


처음에는 단순히 산책이라 여겼다. 그런데 다시 만났을 때도, 그다음에도 아들은 언제나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을 마주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까지 부모님의 손을 잡고 걸었지?'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좁은 길에서 그들을 만나면, 내 발걸음 소리에 어머니가 잠시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아들은 손을 놓았다가 다시 꼭 잡는다. 몇 번이고 마주치며 그 모습이 점점 내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새벽 공기 속에서, 아무 말도 나누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는 두 사람. 그들의 뒷모습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묵직한 사랑이 느껴진다. 그 곁을 지날 때마다, 나는 부끄러우면서도 존경하는 마음이 든다.


이제 새벽 달리기는 나에게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그 안에서 나는 사람을 만나고, 삶을 돌아보고, 사랑을 배운다. 하루를 조금 더 따뜻하게 살아가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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