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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기버 Nov 30. 2020

할머니! 소금 주세요!

2층 할머니와 함께한 특별한 배변훈련

무슨 일이 있나? 배변 훈련이 끝난 둘째 딸. 잘 다니던 유치원에서 갑자기 매일 바지에 실수를 하고 있다. 처음엔 실수겠지 하고 생각했다. 유치원 선생님께는 죄송하다고 인사드리고, 딸에게도 다음에는 미리 화장실을 가자고 이야기하며 좋게 마무리했다. 그런데,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알겠다던 딸은 이상하리만큼 계속 실수를 했다. 심지어 하루에 두 번 실수한 적도 있었다.


휴... 심각해졌다. 혹시 아이가 정서적으로 힘든 일은 있지 않을까. 아이에게 물어보고, 선생님과 상담도 해보고.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큰 아이에게도 물어보고... 그런데 집에서도 실수는 이어졌다. 울먹이며 들리는 소리.


"엄마~! 엄마~ 모르고... 바지에 쉬했어요."


변기 앞까지 갔던 아이가 그 자리에 서서 실수를 한 것이다. 오빠랑 놀다가 참다 참다,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가서야 화장실에 간 딸. 유치원에서도 비슷한 상황인 것 같았다. 일주일 이상 지속되자 나에게도 한계가 왔다. 많은 사람들이 배변훈련에 있어 엄격하지 않아야 한다고, 훗날 다른 강박 증상 같은 다양한 모습들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하는데. 유치원에서 별다른 일은 없어 보이고... 다독여만 주다가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매번 선생님께 죄송하다 인사하는 것도 민망하고, 매일 소변에 젖은 옷을 손빨래하고, 계속 아이와 실랑이하는 것도 싫었다. 이제는 못 참겠다 하며 무섭게 혼내 보기도 하고... 그래도 똑같았다. 하... 나도 남편도 답이 없었다. 어떡해야 하나...


그러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책이 생각났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고 " 영섭이 꼬추 ~ 물총 꼬추~ " 하고 노래를 부르는 동화책이다. 영섭이는 성냥으로 불놀이를 하다가 이불에 실수를 하고 어머니는 영섭이에게 키를 씌워서 동네 친구네 소금 받으러 보내는 이야기. 정말, 정말 안돼서 마지막 방법으로 이 방법을 쓰기로 했다. 혹시 여러 육아서에서 말하는 나쁜 사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되면서도 어떻게든 조금 나아질 수 있을까 해서 말이다. 미리 아이에게 여러 차례 말했다. 또 실수하면 윗집 할머니한테 가서 영섭이처럼 소금 받아와야 한다고. 아이는 끄덕끄덕 했음에도... 또 실수를 하고 왔다.


"안 되겠다. 이층 할머니께 소금 받으러 가자!" 둘째는 엉엉 울면서도 머리에 키 대신 부엌에 있던 스테인리스 망으로 만들어진, 딸아이 머리만 한 소쿠리를 썼다.

키 대신 소쿠리를 쓰고 소금 받으러 가는 딸

혼자 보낼 수 없어서 첫째와 함께 이층으로 올려 보냈다. "할머니께 저 쉬해서 소금 받으러 왔어요~" 하고 말하라고 하고서 말이다. 아이들을 보내 놓고 나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과연 아이는 할 수 있을까? 할머니는 진짜 소금을 주실까? 어떻게 생각하실까?' 나는 문 옆에 귀를 바짝 붙여 아이들이 어떻게 하는지 들어보았다.


띵동. 띵동. 철컥. "할머니~!" 하는 소리와 함께 "쉬했어? 왜 그랬어? 그러면 안돼~ 다음엔 할머니한테 혼나~"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그리고 내려오는 소리. "엄마! 소금 받아 왔어요!"


응?! 조금 전까지 울면서 올라갔던 둘째는 나의 생각과 달리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건 내가 의도한 게 아닌데?!' 하는 생각도 잠시. 아이의 손에 들린 그릇을 보았다.


손에 든 소금은
귀하디 귀한 천일염이었다.

그것도 접시 한가득.


어머님의 푸짐한 마음이 느껴질 만큼.


"에고 할머니가 귀한 소금을 이렇게나 많이 주셨구나." 감사하기도 했고 죄송하기도 한 마음에 집에 있는 참외를 아이들 손에 들려 올려 보냈다. 둘째는 언제 울었냐는 듯 참외를 들고 함박웃음으로 다녀왔다.


"앞으로 또 실수할 거예요?"

"아니요!!"




이층 할머니께 소금 받으러 갔다 온 이후 둘째 아이는 한 번 정도 실수하고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그런데 왜 하필 '소금'이었을까?


옛사람들은 소금을 나쁜 기운을 물리칠 때 사용했다고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문 앞에 소금을 뿌리는 장면을 자주 본 것처럼. 여기에 더해 소변 실수를 하는 아이는 몸이 허약하다고 생각되었고 소금을 받는 과정에서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의 배변훈련으로 힘들어한다. 혼자 하기 힘들다면 이웃과 함께 깊은 의미가 있는 소금 배변훈련에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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