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살던 동네를 떠나다
다른 글을 쓰려 사진첩을 보다가 빌라에서의 마지막 날 사진을 보게 되었다.
30년이 넘었던, 역사가 오래된 빌라.
우리 가족은 둘째가 태어난 해부터 8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곳이다.
결혼부터 10년간 살았던 동네를 떠나는 그날.
사진으로 남긴 기록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쌓였던 짐들을 다 빼고 나니 16평 집도 넓어 보인다.
습기가 찼던 벽에는 곰팡이 자국이 남아있다.
누군가가 보기엔 그저 오래된 허름한 빌라일 수 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행복한 공간이었고 소중한 이웃이 있어 따뜻했던 곳이었다.
아파트같이 단지 내 놀이터는 없지만 골목만 지나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놀이터가 있었다.
소복이 눈이 쌓인 날에는 썰매를 끌고 나가고 예쁜 봄꽃이 피고 살랑살랑 따뜻한 바람 부는 날에는 신나게 뛰어놀고,
무더운 여름에는 래시가드 입고 물총을 어깨에 메고 바닥 분수 물줄기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알록달록 선선한 가을날에는 가로등이 켜질 때까지 놀기도 했다.
마지막 등굣길.
아빠는 아이들에게 축복 기도를 해주고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다.
떠나기 전 날, 아이들과 함께 이웃분들께 편지를 쓰고 조그만 선물을 나누었다.
오래된 빌라이니만큼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사셨는데 아이들을 끔찍이 사랑해 주셨다.
하늘나라에 가신 어르신도 계시고 점점 거동이 불편해지시는 분도 계시고.
이제 못 뵙는다고 생각하니 죄송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늘 아이들에게 반갑게 문 열어주시고 빈 손으로 보내지 않으셨던 이웃분들.
교회에서 받아 드시려 냉동해 두셨던 떡도 주시고 꼬깃꼬깃 주머니에 넣어두셨던 용돈도 주시고.
뭉클했다.
결혼할 때 샀던 냉장고도 수명을 다해서 보내주고.
손때 묻었지만 추억 가득한 가구들도 떠나보내었다.
새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이, 처음으로 아파트에 살러 가는 것이 기대가 되고 설레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오래되고 작았던 빌라가 더욱 마음에 남아 마음이 울컥해진다.
우리 가족에게 행복이자 행운이었던 동네.
그리고 오래된 한양 빌라.
오늘따라 그때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