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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마담 Sep 23. 2019

바람이 불어오는 곳, 산티아고 가는 길

[마음을 담은 편지] #7

왜 그 길을 가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걸으며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유만은 아닌 것 같아요. 일상에 지칠 땐 순례길을 걷는 '나'를 떠올렸습니다. 산티아고까지 걷는다고 해서 현인처럼 각성을 얻지 못할 것라는 점, 잘 압니다.


아름답지만은 않은 길이라는 걸 느껴요. 항상 햇살이 눈부시진 않을 겁니다. 겨울이라 춥고,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세차다고 해요. 또한 비성수기 기간이라 숙소나 레스토랑이 영업하지 않는 곳도 많다고 합니다. 어렵사리 회사를 그만두고 막상 오늘 (이 편지는 출국하러 가는 동안에 썼습니다),


떠나는 날이 오니 설레는 만큼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잘 걸을 수 있을까?', '타국에서 다 큰 미아가 되는 건 아닐까?', '잠은 제대로 잘 수 있을까?', '먹을 건?', '외국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무릎은 버틸까?', '얼마나 추울까?', '짐은 제대로 쌓았나?' 그리고, '어떻게... 가야 되지?'


늘 '어떻게 가야 되지?' 라는 질문을 안고 살았습니다. 가야 할 곳이 뚜렷하지 않으면 제자리에서 맴도는 '나' 를 만났어요. 한편, 목적지가 보이면 느긋하게 주변을 돌아보거나 감상할 여유 없이 그 곳만 보고 갑니다. 마치 경주마처럼 혹은 100미터 뜀박질 선수처럼.


이른 아침 집을 나섰습니다. 잠을 많이 설쳤어도 눈이 번쩍 뜨였어요. 귓가에 꽂은 이어폰으로 김광석의 노래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이 들려옵니다. 흥겨운 리듬은 설레임을, 거침없는 가사는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불현듯 눈가도 붉어졌죠.


'그래, 가보자~ 무엇이 기다리는지...' 불안과 두려움을 조금 걷어내 봅니다. 매사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리다 많이 지쳤나 봅니다. 그 길이 제게 가져다 줄 것이 무엇일까요? 또한 그 길을 걷고 나서 얻고 싶은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어떤 것이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활짝 열도록 다짐합니다. 돌아왔을 때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더 가벼운 '나' 이기를 바랍니다. 제게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은 지금 '산티아고 가는 길' 입니다.



순례길에는 조개 모양과 화살표로 가야할 길을 표시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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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왕마담 드림

http://www.wangmada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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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를 읽고 '순례길'은 점차 커져가는 꿈이 됐습니다. 왠지 그곳을 다녀오면 삶에 대해 뭔가 통찰을 얻을 거 같았어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2011년 12월부터 2012년 1월 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길'을 다녀왔습니다. 도보 여행도, 한 달 정도의 긴 해외여행도 처음이었습니다. 좌충우돌이었죠. 뜻깊은 여행길이 분명했지만 깨달음은 개뿔, 처음엔 힘들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다녀온 후 시간이 지날수록 나름의 의미가 덧붙어 아련해지네요. 다음 편지엔 그 여행길 중 가장 잊히지 않는 사건을 보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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