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왕마담 Aug 26. 2019

노래 울렁증

[마음을 담은 편지] #4

침부터 말랐습니다. 목구멍이 건조해 쩍쩍 갈라졌어요. 물로 입을 적시고 마셔도 소용 없었습니다. 차례가 오지 않길 바라면서, 야릇한 흥분으로 기다리는 제 모습이 낯설었어요. 조금 전 다녀 왔던 화장실은 왜 또 가고 싶은지.... 물을 많이 마셔서인지 긴장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무대에 올라야할 순간, 콩닥거리던 가슴은 쿵쾅거렸습니다. 가사가 잘 외워졌는지 걱정하는 찰나, 반주가 시작됐어요. 첫 소절 'Catari(카타리)'로 노래를 시작했는데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더 긴장됐어요. 게다가 물기없는 숨길은 소리낼 때마다 따끔거려 화끈했습니다.


'물 한 모금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자 숨 쉴 타이밍을 놓쳤어요. 반주는 신경 쓰지 않고 갈 길 갔습니다. 당황했는데 신기하게 생각나지 않는 가사를 입이 쫓아가네요. '에라~ 모르겠다~', 다짐 같은 포기가 떠오르자 뱃심이 생겼습니다. 조금이나마 울리 듯 소리가 퍼지더군요.


심각한 음치입니다. 신나는 트롯을 불러도 엄숙한 분위기를 만드는 능력자죠. 술에 취하지 않는 이상 아니 취해도 노래방가는 걸 극히 꺼려요. 남앞에서 노래하는 걸 무서워 합니다.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있는 거 같아요. 분명.


요즘엔 발레나 오페라, 클래식을 자주 보지만, 공연관람에 재미들린 건 뮤지컬 덕분이죠. 자주 접하니 아리아 한 곡 정도 부르고 싶었습니다. 특히 '지금 이 순간'을 조승우씨 만큼 멋지게 부르는 상상에 혼자 뿌듯해했어요. 결국 그 욕심을 참지 못하고, 성악 클래스를 덜컥 등록했어요.


수업가는 길은 설렜지만 무거웠습니다. 처음 배운 곡은 'Catari Catari' 혹은 '무정한 마음’으로 알려진 나폴리 민요 <Core 'ngrato> 였습니다. 끝나고 '그만둘까' 고민됐어요. 노래는 커녕 읽는 것도 어려웠거든요. 검색하니 파바로티나 도밍고 등 유명한 테너들이 즐겨 불렀습니다. 멋지더군요.


한 달만 다녀보자 마음 먹은게 무대까지 서게 될 줄 몰랐습니다. 매년 마지막 학기가 끝날 때마다 지인들을 초대하여 발표회를 해요. 같은 지도 교수님에게 배운 여러 반의 모든 학생들이 모입니다. 그 음악회가 지난 주였습니다. 제가 부른 곡은 바로 <Core 'ngrato>입니다.


3주 정도 이 곡과 함께 살았어요. 틈만 나면 성악가들이 부른 곡을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앞에서 노래 부른다는 상상에 어찌나 떨리던지요.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반면 잘 불러 폼 나 보이고 싶었습니다. 피아노 반주를 녹음해 차 안에서 부를 땐 누군가 볼 새라 들을 새라 쑥스러웠어요.


연습하려고 녹음한 내 노래를 직접 듣는 건 손발이 오그라들었습니다. 하지만, 늘상 콧노래를 부르거나 흥얼거렸어요. 기분이 업되고 활기찼습니다. 음악회를 준비하면서 가슴은 이미 뛰고 있었죠. 일상이 노래가 됐어요.


.

.

.

from, 왕마담 드림

http://www.wangmadam.net


P.S : 남 앞에서 노래하는 걸 무척 민망해합니다. 잘 부르고 싶은 욕심만큼 부끄러워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어요. 배운지 3개월 만에 서게된 무대였죠. 얼마나 떨었던지 어떻게 노래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취미로 성악을 시작한지 5년이 넘는 지금도, 노래할 땐 여전히 쑥스러워 떨리죠. 언제쯤 무대에서 혹은 남 앞에서 여유롭게 부를 수 있을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떠나기 어려워진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