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란 이름을 갖고 지어가는 일상은 벅참과 소소한 것에서 오는 신비로운 풍요도 있지만 시시때때로 어질러진 집구석(구석)에 동시다발로 두 아이가 고집 피우며 울어대고 보채 온 기운을 뺏길 때는
「이게 뭐라고」 마음에 뭉글어지는 탄식과 허탈감 속 자책감이 물 밀듯 밀려든다.
오늘도 생각해보니 한 끼도 제대로 먹지 않고 하루가 갔다.
'조금만 더 ' 하고 작업에 욕심을 부린 날에는 집 정리도 내 몸의 균형도 흐트러지기 쉽다. 둘째 아이 언어치료까지 다녀온 오늘, 저녁 시간에 이런저런 이유로 보채는 두 아이가 아니라 집안꼴에 짜증이 나고 분명 내 몸이건만을 내 의지대로 되지 않음에 어찌나 화가 나던지.
결국은 「이게 뭐라고」 반사 자동처럼 튀어나오는 말.
이게 뭐라고 나는 이걸 하고 있을 까_ 짓는 것들과 지어가는 것들의 내 힘을 분배해 즐거이이루어가는 균형점을 찾는 여정은 꽤 긴 시간일 거 같다.
그렇게 나를 돌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두 아이를 기르는 서른여덟, 이제야 조금 알 거 같다.
해내는 것이 먼저가 아닌 해내기 위해 나를 먼저 살피고 챙겨야 그 이후에 이뤄갈 수 있다는 걸 말이다.
해야 하는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내기 위해서 나의 체력, 나의 시간, 나의 마음을 어떤 우선순위와 분배를 해야 하는 지를 집중하고 힘써 기울이지 않으면 상황에 따라 끌려가며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한 계절을 지나갈 수 밖에 없음을 말이다.
달을 좋아한다.
고정되지 않는 모습으로 채움과 비움을 유유자적 반복하며 자신의 고갯짓을 바꾸어가는 달, 밤을 비취는 역할을 잃지 않는 그 달처럼 살면 되지 않을 까_ 아니 그리 살고 싶다.
커가는 아이와 같이 나 또한 변화무쌍한 하루하루를 맞닥뜨리는 상황마다 내 자세도 내 시선도 바꾸어가며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