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저품격 첫 배낭여행 시-리즈 2탄. <몽마르트르에서 야바위를.>
야바위 해 본 사람?
많이들 해봤을 것이다.
테이블에 컵 서너 개를 어지럽게 돌려가며 어떤 컵에 주사위가 들었는지 찾는 그 놀이.
강아지 간식 숨겨 놓고도 해보고, 괜히 종이컵이 남으면 해 보는 그 놀이.
근데 나는 그걸 파리 몽마르트르 아래 시장에서 했다.
꾼들한테 돈도 뺏겼다.
무려 50유로.
왜?
도대체 왜 나는 거기까지 가서 야바위를 하고 야바위꾼들한테 당했을까?
이건 나도 아직까지 풀지 못한 의문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몽마르트르는 언덕은 파리 전역을 볼 수 있는 광경으로도 유명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나쁜 치안으로도 유명하다.
위협적인 Excuse me! 를 외치며 이상한 종이에 싸인해 달라고 하고, 싸인하면 돈을 기부해야 한다는 사람들.
조잡한 실 팔찌를 강제로 손목에 묶어 놓고 팔지 값을 달라는 사람들.
소매치기.
이러한 악명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나는 몽마르트르를 갈 때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갔다.
가방도 앞으로 메고, 현금도 50불만 인출하고
무엇보다 최고 거지꼴로 하고 다녔다.
표적에서 피하기 위해 누가 봐도 가져갈 것도 없는 가난한 대학생 같은 행색으로 다니고자 노력했는데, 생각해보니 노력할 필요 없이 가져갈 것도 없는 가난한 대학생 맞았네 나.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키 크고 덩치 큰 형님들이 귀염뽀짝한 팔찌를 들고 다니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전화하는 척하면서 1차 관문 통과.
두 번째로 무서운 언니들이 Excuse me 하면서 종이를 들이밀었다.
"아 저 한국말 못 해요!!!!!!"
한국어로 아무 말하면서 옷소매를 거칠게 잡아끄는 손길을 쳐내고 2차 관문 통과.
그렇게 도착한 몽마르트르는 멋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저 멀리 에펠탑이 보였다.
그리고 높게 솟은 가로수에 호리호리한 남자가 매달려 축구공으로 묘기를 부리고 있었다.
그 높은 가로수에 오로지 팔 힘으로 매달려서는 축구공을 발끝에 올렸다, 코에 올렸다, 머리에 올렸다 하는데
파리 전역을 배경으로 아슬아슬한 묘기를 보고 있자니 이게 다 꿈인가 했다.
몽마르트르도, 축구공 재주꾼도, 무서운 언니 형님들 피해 혼자서 씩씩하게 여행하고 있는 나 자신도 너무 멋졌다.
나 자신에게 낮맥 한 병을 선물로 주면서 나 자신과 파리에 대한 애정을 키워가고 있을 때,
그 일이 벌어졌다.
내 원래 계획은 몽마르트르에서 물랭루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로트 랙의 그림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물랭루주를 꼭 가보고 싶었다.
파리 환락의 중심. 사교계의 최전방. 양복 입고 단안경 쓴 신사들이 시가를 피고 롱 글로브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숙녀들이 와인을 마실 것 같은 빨간 극장.
그런데 길을 잘 못 들었다.
나는 구글맵을 잘 사용하지 않는데, 길을 잃어 낯선 곳에 도착하더라도 그거 나름대로 낭만적이라 서다.
좌회전 우회전은 잘 구분 못 하지만 긍정적인 편이다.
무튼 길을 잘 못 들어 정신없는 시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말이 시장이지 야바위꾼들 천지였다.
그런 모습은 정말이지 처음 봤다. 조심해야 한다는 마음과 호기심이 싸웠는데, 결국 호기심이 이겼다.
까치발을 들고 한 무리의 야바위꾼들을 뒤에서 멀찍이 구경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그 무리의 가장 가운데에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언제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나 정말 조심히 멀찍이 가만히 있었고 그 사람들도 계속 컵을 돌리고 있었는데
나 왜 테이블 앞에 있지????
정말 홀린다는 말이 괜히 있지 않다.
무튼 나를 감싸고 있던 5-6명의 사람들이 Beautiful Mademoiselle~ (예쁜 마드모아젤~) 이러면서 컵 하나를 골라보라고 시끄럽게 성화였고
야바위꾼의 실력이 별로였는지 어느 컵 안에 주사위가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홀린 듯이 검지로 하나의 컵을 가리켰고, (왜?)
당연히 거기에 주사위는 없었다.
그러자 그들은 당당히 내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돈이 없음을 강력하게 어필하기 위해 지갑을 열었는데(도대체 왜?)
거기에 있던 50유로 홀라당 뺏겼다.
너무 무서워서 애당초 반항할 생각도 없었지만,
옆에 또 다른 희생자가 침 맞는 걸 보고 더더욱 그냥 빨리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Merci!!!(고마워!!!) 하고 (왜????????)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 시장에서 벗어나면서 나 스스로가 너무 웃겼다.
나는 도대체 왜 그 시장에 들어가서 야바위를 하면서 지갑을 열었나.
또 소심한 관종이라서 한국 가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말할 썰 하나 생겼다고 좋아했다.
(다시 말해서, 멍청하지만 긍정적인 편.)
그리고는 사랑의 벽에 우연히 도착했다.
사랑의 벽 또한 유명한 명소지만, 그보다 그곳의 뱅쇼가 생각난다.
그 근처에서 작은 로컬 행사가 열리고 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지역 아이리시 친목 주말 장터 같은 느낌이었던 거 같다.
무튼 간이 무대 위에서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의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합창하고 있었고,
3유로인가 5유로인가 저렴한 가격에 따뜻하고 향기로운 뱅쇼를 팔고 있었기 때문에
행복했다.
그러니까 나는 몽마르트르에서 야바위 하다가 한 겨울에 파리의 사랑의 벽 근방에서 모르는 전통 노래를 들으며 따뜻한 뱅쇼를 마셨다.
나름 낭만적인 야바위 추억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