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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글렌체크, 시대를 앞서간 일렉트로닉 최강자

글렌체크(Glen Check) 음악 리뷰

by 자유로




글렌체크의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유튜브였다. 알고리즘에 매료되어 검지손가락 하나만 멍하니 움직이다가 2024년 인천에서 열린 펜타포트 락페스티벌 영상을 우연찮게 보게 됐다. 커다란 무대에 밴드는 뒷전이고 츄리닝을 입은 아저씨(?가 율동을 추고 있었다. <60's Cardin'>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심장을 뛰게 하는 음악을 듣고 미친듯이 찾아봤다. 어디서 나온 신인 밴드지? 싶어 검색해보니 무려 2011년에 데뷔한 만만치 않은 경력의 밴드였다. 나를 그들의 매력에 빠지게 한 <60's Cardin'> 역시 글렌체크의 정규 1집 앨범에 수록된, 무려 2011년에 나온 음원이었다. 나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어제 나왔다고 해도 믿을 만큼 촌스럽지 않은 사운드에 세련된 보컬. 한국에 이런 일렉트로닉 신스 팝 밴드가 있다는 건 축복이다.







<60's Cardin'>

한 인터뷰에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지산 락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라디오 헤드가 참여했을 때, 라디오헤드 다음 공연이 바로 우리였다. 그때 색다르고 재밌는 걸 하자고 논의해서 여럿이서 춤을 추기 시작한 게 시작이다.

이런 아이디어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아 그들은 락페스티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식 체조' 담당이 되었다. 현대카드 광고부터 각종 CF의 배경음악으로 등장할 만큼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이미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는 음악이다. 이제야 그들의 음악을 알게 된 게 후회가 될 정도.

제목의 Cardin'은 패션 디자이너 피에르 카르뎅(Pierre Cardin)을 뜻한다. 그는 우주시대를 반영한 실험적인 패션을 선보이며 미래주의적 디자인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이 노래가 수록된 1집 앨범의 제목이 'Haute Couture'라는 파리의 유명한 패션쇼 이름인 걸 보면 아마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곡의 가사를 훑어보면 '스스로를 한계에 단정하지 말라'는 식의 내용이 있다. 피에르 카르뎅의 실험적인 시도가 낯설고 파격적일 수 있지만, 그안에 담긴 실질적인 메시지를 읽기 위해 노력해보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는 듯하다.


중독성 있는 메인 신스 리듬과 뒤에 다채롭게 깔리는 베이스 신스가 거의 반복되지만, 단순하게 느껴지면서도 가볍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2011년에 발매된 곡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운드가 깔끔하고 세련됐다.


개인적으로 나는 밴드의 '음원'은 '맛보기'라고 생각한다. 밴드 음악의 감동은 라이브 공연에서, 보컬의 성량이나 직접적으로 와닿는 악기의 사운드에서부터 오는 거라고 늘 생각해왔다. 하지만 글렌체크는 다르다. 청량하고 가벼운 일렉트로닉 사운드로도 마음을 울린다. 상업음악에 흔하게 쓰이는 진부한 사운드가 아니다. 분명 심도 있고 울림이 있다. 피에르 카르뎅의 실험적인 시도에 대한 경의를 음악으로 표한 것처럼, 그들의 음악 역시 한계가 없는 듯하다.






<4ever>


넷플릭스 '더 보이프렌드'에도 삽입된 곡이다. 무게감 있는 베이스 신스로 시작해 청량하고 시원한 사운드로 전환되며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김준원 특유의 보컬이 더해져 어느새 곡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한 장르를 결합해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실험적인 시도를 엿볼 수 있다. 위에서 말했듯 청량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차를 타고 창문을 전부 연 채 바닷가 옆 해안도로를 달리는 듯하다. 물기 가득한 무거운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시원하고 상쾌한, 그러나 왠지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아릿한 느낌이 이 노래의 가사처럼 저물어가는 한여름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JTBC에서 방영한 '비긴어게인' 클립을 통해 이 곡의 생생한 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Dazed & Confused>




추천곡은 여기까지. 긴 말 늘어놓지 않겠다. 일단 들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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