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엔헤두안나 Nov 17. 2023

세모녀의 고군분투 성장기

1화 - 시작 -자기 효능감-

 2023년 11월 16일


 오늘은 2024학년도 수능시험 날입니다.


  수능 시작과 동시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기로 약속했습니다. 저는 장기 출장 교수의 대강 수업이 마무리 되었고, 대학을 졸업한 큰딸은 집에 내려와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2 작은딸은 수능 날이라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모두 함께 있는 날에 맞추어 트리를 만들면서 내년을 기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주섬주섬 작년에 보관해 두었던 재료들을 꺼내놓고 아이들이 일어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작년에는 기분이 이러지 않았어. 그냥 마냥 좋았고, 함께 트리 만드는 것도 정말 좋았는데……. 오늘은 기분이 너무 이상해.”


  늦게 일어날 줄 알았던 딸아이는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아이는 며칠 전부터 심리적으로 불안한 증상을 보였습니다. 본인이 대학을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되풀이 하면서 심한 감정기복을 보였습니다.


  “말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오는 거야. 우리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자. 그러다 보면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너를 볼 수 있을 거야.” 이런 상투적인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달리 해 줄 말이 없었습니다.  


  작은 딸아이는 초등학교부터 영재교육을 받았습니다. 영재학교와 과학고를 목표로 중학교 내내 선행을 하면서 학업에 매달렸습니다. 결과는 1차 합격은 했지만 최종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실패경험은 아이를 많이 위축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일반고에 진학을 했으나 생각만큼 성적이 나와 주지 않았습니다.  


  초등 5학년부터 중학교 3년 동안의 선행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좌절한 아이는 공부에 전력을 다하지 않았고 그렇게 1학년을 마쳤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엉망이 된 내신 등급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기대했던 대학은 어림도 없었습니다. 자신이 정한 데드라인의 학교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걱정은 불안을 가중시켰습니다. 아이는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사회적 인지이론가인 알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 1925~)는 자기효능감 self-efficacy 개념을 발달시키고 정교화 했습니다. 자기효능감은 바람직한 효과를 산출하는 행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개인의 신념을 가리킵니다. 자아존중감이 자기 가치에 대한 판단이라면 효능감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판단을 수반합니다.


  자기효능감의 원천에는 성취경험, 대리경험, 언어적 설득, 정서적 각성 등 네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효능감에 가장 영향을 주는 것은 스스로 성취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과고 입시 실패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는 성적으로 인한 실패경험은 아이의 효능감을 저하시켰습니다.  


 이런 아이에게 옆에서 아무리 “너는 할 수 있어. 잘 될거야”와 같은 말은 그저 공허한 희망고문일 뿐입니다. 심리학을 공부한 엄마는 아이에게 이럴 때 어떻게 해주어야 할까요?  많은 심리학 이론들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힘들다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딸아이를 안아주는 것 외에는…….


  오히려 심리학 석사에 문학 박사인 엄마보다 8년 전 이 과정을 겪은 언니가 더 도움이 됩니다.  엄마의 할 수 있다는 무한 긍정의 공허한 언어보다 언니의 뼈 때리는 조언이 아이를 움직이게 합니다.


“그렇다고 수시를 절대 포기하면 안돼. 현역(고3)에게는 수시가 제일 강한 카드고 무기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N수생이 포진되어 있는 정시는 예측할 수 없어. 그러니까 3학년 1학기까지 내신을 포기하면 안돼.”


아이는 언니의 말을 듣고 가방을 챙겨 ‘부엉이(관리형독서실)’로 향했습니다. 무거운 가방만큼 축 진 아이의 어깨가 많이 안쓰러운 그런 날이었습니다. 작은 성취경험이 모여 아이의 자기효능감이 다시 향상되기를 그래서 아이의 얼굴이 밝아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것 외에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아이 옆에 든든한 언니가 있다는 것이 말이지요. 여덟살 터울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아이의 강한 성격으로 인해 둘은 정말 많이 갈등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언니 바라기가 되어 있더군요.  학교 갔다오면 이제 엄마가 아니라 언니부터 찾습니다.  정말 보기 좋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보려 합니다. 가장 힘든 시기지만, 서로에게 많이 의지하고 위로받으면서 그렇게 성장해 갈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저도 엄마로, 가르치는 사람으로, 상담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아이의 수능 365일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엄마인 저는 대학시간강사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고, 여덟살 터울의 언니는 대학을 졸업하고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하루하루가 전쟁이 될 것을 예상합니다. 그 좌충우돌의 시간들을 기록하려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는 시간들로 채워질 이 공간이 소중한 기록장으로,우리 가족의 역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면서 때로는 저의 마음도 치료하기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려 합니다.


완성된 트리를 보면서 아이들의 미래가 이렇게 밝고 아름답기를 기원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