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아이는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국가공인 한국 실용글쓰기’ 시험을 보러가기 위해서입니다. 경찰임용 시험을 앞두고 가산점을 채우기 위한 과정입니다.
‘국가공인 한국 실용글쓰기’는 경찰, 소방 임용이나 공기업 승진시험에서 가산점으로 활용된다고 합니다. 경찰 시험은 필기와, 체력, 면접 등 관문이 일반 공무원 시험에 비해 까다롭습니다. 체력이 약한 아이는 가산점을 채워야만 경쟁력이 있다며, 글쓰기와 한국사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사실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지만, 이런 자격증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밤새 소리 없이 첫눈이 내렸습니다. 전날 아빠에게 시험장까지 데려달라고 하던 딸은 길이 미끄러워 위험하다며 지하철을 타고 가겠다고 합니다. 요즘 일이 많아 피곤한 아빠를 위한 나름의 배려입니다. 역시 큰딸이라 다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큰딸아이는 논술로 대학을 갔습니다.
대학원 공부를 할 때 대입논술 과외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논술 실력과 내신, 수능 실력은 비례한다는 것을 말이지요. 논술시험은 경쟁률도 어마어마하고, 논리적인 사고력과 더불어 정말 글을 잘 써야만 합격할 수 있습니다.
그다지 좋지 않은 아이의 성적으로 논술 역시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정식으로 논술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고3 초반에 아이가 논술을 한 번 써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무심히 기출문제를 던져주었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랐습니다. 모범답안을 참고했냐고 할 정도로 훌륭한 답안이었습니다. 아이는 대학에 합격을 했고, 논술로 합격한 학생이 극히 드문 상황에서 신화가 되었습니다.
엄마의 잘못된 인지왜곡으로 인해 아이의 인생이 달라질 뻔 했습니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인지왜곡을 ‘자의적 추론’이라고 합니다. 적절한 증거가 없음에도 부정적 예측을 하고 이를 사실로 간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그때 안 될 것이라는 결론으로 아이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요?
대학 3~4학년을 코로나와 함께 보낸 아이는 특별한 스펙을 쌓지 못했습니다. 좁아진 취업문을 뚫기에는 자신의 학벌이나 스펙이 약하다고 판단한 아이는 경찰공무원 시험을 보겠다고 했습니다. 직업에 편견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조금 망설여지더군요. 여자 아이가 하기에는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몇 번이고 되물었습니다. 그 직업은 사명감이 있어야 할 수 있다고 말이지요.
아이는 확고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원리 원칙과 안전을 추구하는 성격이 이 직업에 최적화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지요. 그렇게 결정을 한 후 아이는 최선을 다하고 있고 우리 부부는 나름대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졸업 후 쉬지 않고 달리고 있는 아이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자신의 길을 알아서 가고 있는 딸아이가 대견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친구들의 SNS를 보면서 현타가 오는 모양입니다. 졸업을 미루고 여행 중인 친구들, 해외로 인턴을 나가서 일상을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지요. 그래도 잘 견디고 있는 중입니다. 그 곁에서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밥을 챙겨주고, 커피를 내려주고, 때로는 수다테라피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면서 말이지요.
아이가 밝게 시험장을 걸어 나옵니다. 조금 어려웠지만, 그냥 실력으로 풀었노라면서…….
오늘은 잠시 공부를 내려놓고 술 한 잔 하자고 권했습니다. 딸 바보가 된 아빠의 어설픈 아재개그를 들으면서 말이지요. 가끔은 이런 보상도 필요합니다. 미성년자인 수능 수험생은 음료수를 홀짝이면서 함께 동참할 날을 기다립니다.
인생에 모범답안이 있어 이렇게 하라고 알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생각합니다. 어쩌면 함께 하는 이런 소확행이 모범답안 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