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빙교수로 불리기도 하지만 일 년에 한 번씩 재계약을 해야 하는 비정규 지식 노동자입니다.
대학 사정은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특히 지방대는 더욱 어려운 상황입니다. 강사들은 그 직격탄을 고스란히 맞고 있지요. 평생을 투자한 사업에 완벽하게 실패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확히 불혹이 시작되는 나이에 박사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늦은 출발이었지요.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해 조교 생활도 했고, 과외와 강의를 해가면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공부 보다 ‘아줌마가 뭘 할 수 있겠어’ 라는 소리를 듣기 싫었던 이유가 저를 움직이게 한 것 같습니다.
박사과정은 석사 때와는 다른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렇게 3년을 수료하고 1년 동안 논문을 썼습니다. 당시만 해도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강의를 할 수 있었고, 그렇게 나의 강사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드디어 꿈만 같았던 강단에 섰습니다. 밤을 새워 열심히 준비했고, 거울 앞에서 연습을 반복 한 후 첫 강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준비했던 내용을 절반도 풀어내지 못한 채 수업을 마쳤습니다. 강의실을 나오는 뒤통수가 뜨거웠습니다. 학생들에게 미안했고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더 열심히 교수법을 연구해야만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십 년 전 일이네요.
그 후 강사법 개혁으로 인해 지형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공개 임용 방식으로 바뀌면서 학교는 말 그대로 정글이 되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시간들로 채워야 했습니다.
50대 중반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위기감은 불안으로 바뀌었습니다. 전임 임용은 꿈도 꿀 수 없게 된 현실에서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그리고 막상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다는 사실에 참담했습니다.
다시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글쓰기 치료를 연구하고 문학작품이나 영화 속 인물의 심리를 분석하는 연구를 했습니다. 이를 좀 더 체계화하기 위해 상담심리 석사과정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2년 반을 다시 학생으로 살았습니다.
무사히 학위 과정을 마쳤습니다. 이제 제 이력에는 심리학 석사라는 스펙이 더해졌습니다. 남편의 지지와 아이들의 격려가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항상 ‘이정도면 되었다. 이 이상은 나의 한계치를 벗어나는 일이고 나는 더 이상 할 수 없다.’라고 선을 그어 놓았습니다. 자기 효능감이 낮았던 것은 딸이 아니라 바로 나였습니다. 목표도 그에 따른 계획도 늘 고만고만했지요. 그렇게 안주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는 한계를 스스로 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올 4월부터 생각과 지식을 정리하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주로 강의노트와 심리학 책, 소설 서평을 쓰고 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알았습니다. 내가 의외로 글재주가 있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요즘 나는 새벽기상을 합니다. 많이 분주하고 바쁜 일상입니다. 주부로, 엄마로, 교수로, 연구자로, 글 쓰는 작가로 사는 일상이 말이지요. 물론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숭숭 구멍이 나기도 합니다. 특히 50대 나이에 찾아온 갱년기는 내가 사투를 벌여야 하는 만만치 않은 복병입니다.
개인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0~1973)는 ‘우월성 추구(striving for superiority)’가 인간의 기본적 추동으로 선천적 경향성을 갖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우월성 추구는 일생을 통해 환경을 적절히 다스리며 동기의 지침이 됩니다. 인간이 문제에 직면할 경우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낮은 것은 높게, 미완성은 완성으로, 무능은 유능으로 변화시키는 것에 작용합니다.
어느 날 문득 진짜 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 모녀의 고군분투 생존기’를 주제로 글을 쓰고 싶다고 했을 때 아이들이 보인 반응은 절대반대였습니다. 자신들의 사생활이 엄마의 시점으로 왜곡되는 것도, 불특정 다수에게 까발려 지는 상황도 불편하게 여겨진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반드시 딸들의 동의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A4 2장 분량의 출간 기획서를 작성했습니다. 왜 이 글을 쓰고 싶은지 기획 의도를 명확하게 쓰고 설득을 했습니다. 치열한 삶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는 세 모녀가 전하는 일상이 우리 가족에게는 역사가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치유가 될 수 있다고 말이지요.
1화를 쓰고 2화가 연재된 지금 아이들과 남편은 열렬한 구독자가 되었습니다. 남편이 자기 이야기는 왜 없냐면서 작은 목소리로 불평합니다. 자신은 이렇게 또 소외된다고 말이지요. 중년 남성의 갱년기와 우울증이 무서워 2화에서 남편을 살짝 등장시켰습니다. 기획 의도와는 다르지만 아이처럼 좋아하는 남편을 보면서 잘 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가족은 이 글을 통해 하나가 되었습니다. 글이 이렇게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2024년은 우리 세 모녀에게 ‘인생의 전환’이 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길고 힘든 마라톤이 될 것을 예상합니다. 그 레이스에서 걷기도 하고 때로는 쉬어 가기도 하면서 완주해 보려 합니다. 세 모녀의 고군분투 생존기가 세 모녀의 성장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