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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헤두안나 Nov 24. 2023

세 모녀의 고군분투 생존기

4화 정시 말고 수시, 교과 말고 학종 - 자아정체감(identity) 

큰 아이는 본인이 하고 싶은 진로가 명확했습니다. 언론 관련 일을 하고 싶어 했고 관련 스펙을 쌓았지요. 초등학교 시절에는 청와대 기자를 했고, 중 ․ 고등학교에서는 방송부 일과 방송부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고3이 되어 수시로 언론관련 학과에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다양한 스펙에도 불구하고 당락을 결정하는 것은 교과 성적이었습니다. 그렇게 관련학과를 포기하고 문과의 정석인 경영학을 전공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경찰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작은 딸아이는 화장품관련 학과를 가고 싶어 합니다. 


자신을 가꾸는 것을 좋아하고 패션과 화장품에 관심이 많습니다. 화장한 모습을 보면 예쁜 아이가 더 빛이 납니다. (이는 전적으로 엄마의 전지적 시점이라는 점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재능으로 언니와 엄마에게 화장품을 추천해 주기도 합니다. 지난 9월 언니와 둘이 떠난 일본 여행에서 콤팩트를 선물로 사왔습니다. 지금 저의 최애 상품입니다.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특히 청소년시기에 쉽지 않은 일이지요. 대부분 성적에 맞추어 학과를 선택하는 현실에서 다행히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에릭 에릭슨(Erick H. Erikson, 1902~1994)은 심리사회적 발달단계에서 청소년기(12~18세)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 시기는 자신이 누구인지 탐색하고 알아가는 ‘자아정체성(identity)’ 을 형성하는 시기입니다. 정체성 확립에 성공할 경우 건강하게 성인기를 맞이할 수 있으나, 실패할 경우 역할혼돈을 겪습니다. 정체감을 형성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어렵고 불안한 과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상 형성을 위한 심리적 유예기간은 필요합니다. 



아이는 수시전형 중에서도 학생부종합전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재수생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정시 말고 수시’를 공략할 수밖에 없습니다. 


입시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집니다. 적응할 만하면 새로운 정책이 나오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고스란히 희생양이 되지요. 2025년 입시 역시 변화를 예고합니다. 24년부터 자소서가 폐지되었고 독서활동, 봉사활동, 교내수상, 진로희망 등 많은 부분이 폐지되거나 간소화 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으로 평가하겠다는 것일까요? 결국 교과 성적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여기에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창의적 체험활동 특기사항,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반영 비중이 커졌습니다. 동아리 활동이나 과목 세특에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고2가 되면서 의대준비를 하는 친구와 함께 화학 & 생명과학 & 의학 정규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다른 동아리와 차별화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담당 선생님을 섭외 하느라 학년 초 매우 분주했습니다. 열심히 한 보람인지 경쟁률이 무려 10:1이 되었다고 자랑하더군요. 


선생님과 아이들의 협력으로 다른 동아리에 비해 활성화가 이루어진 모양입니다. 학교 대표로 뽑혀 교육과학연구원에서 동아리 활동과 경과보고를 한다고 합니다. 밤늦게까지 발표 자료를 만들고, 대본을 써서 연습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울 딸은 대학에 입학만 하면 최고로 우수한 학생이 될 거야. 정말 대단해.” 

대학 선생 입장에서 봐도 자료 수준이나 발표 실력이 매우 우수합니다. 

그런데, 그 말끝에  

“내가 정말 대학에 갈 수 있을까?”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알아달라는 표시라는 것을 알면서도, 좀 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엄마, 고3 엄마 맞아?”

오늘은 이런 투정을 부리기도 하네요. 이제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 골을 냅니다. 제가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것일까요? 일희일비하는 것보다 조금 내려놓는 것이 서로를 위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도 그것을 원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무심해도 너무 무심했을까요? 


사실 브런치 글쓰기에 블로그에 한창 자기계발 중인 엄마는 아이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것이 서운했던 모양입니다. 


“발표 잘했다고 선생님이 선물 주셨어.”

담당 선생님이 아이들의 노고에 작은 선물을 해 주신 모양입니다. 잘 할 줄 알았습니다. 화학 과목 세특과, 동아리 활동 부분은 잘 써주실 것 같습니다. 


아이는 수학학원도 못가고 잠에 빠졌습니다. 며칠 동안 수행평가와 발표 준비에 밤잠을 설치더니 이래저래 고단함이 몰려온 듯합니다. 그냥 자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학교 가는 얼굴이 밝지 않습니다. 아마도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 때문이겠지요. 그 마음이 이해되어 말없이 안아줬습니다. 아이 얼굴 절반을 덮은 다크서클이 오늘 따라 더욱 깊게 느껴집니다.


오로지 대학 입학 하나만을 보고 가는 아이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내신과 수능 그리고 논술까지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경쟁력이 생기는 현실입니다. 과연 공부가 가장 쉬웠노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말 그대로 헬조선에서 살아내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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