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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헤두안나 Nov 30. 2023

세 모녀의 고군분투 생존기

5화 ISTJ vs ENFP - 안전욕구

2023년 11월 30일


11월 마지막 날입니다. 돌아보니 일 년 동안 열심히도 달려 왔네요. 남아있는 한 장의 달력이 주는 부담 때문일까요? 요즘 깊은 잠을 자지 못잡니다.


그러다 재난문자에 깜짝 놀랐습니다. 경북에서 4.0의 지진이 일어났다는 알림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조금 불안해집니다.



 

인간에게는 안전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이는 인본주의 심리학자 매슬로의 욕구 위계설 두 번째에 해당하는 욕구입니다. 안전 욕구는 공포나 불안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질서체계가 유지되는 곳을 선호하는 유기체의 요구에서 비롯됩니다.




심리적으로 만족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곳은 개인마다 다르겠지요.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하면서 가장 편안하고 안전감을 느끼는 공간이 어디인지 관찰해 보았습니다.


큰아이의 MBTI는 ISTJ, 작은 아이는 ENFP 입니다. 완전 정반대의 성격이지요.


내향형(I)인 큰 아이는 말 그대로 집순이 입니다. 공부도 자기 방에서 합니다. 이 부분은 나와 닮았습니다. 수업이 있거나 지인들과의 약속으로 인해 밖에 나가 에너지를 쓰고 오는 날은 체력이 소진됩니다. 그래서 집에 들어오면 웬만하면 집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아이는 집이 편안하기는 하지만 안일할 수 있는 자신을 콘트롤하기 위해 책상과 침대의 공간을 최소화 해 놓았습니다. 의자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하도록 말이지요. 자신과의 싸움이겠지요.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가장 편안하고 집중이 잘 되는 곳이 자기 방이라고 말하는 아이를 위해 최적의 학습 조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그와는 정반대로 작은 아이는 전형적인 외향형(E)입니다. 아빠의 성격을 닮았습니다. 집에서 공부하는 것 보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선호합니다. 특히 시끄러운 까페에서도 집중이 잘된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면서 나와 큰아이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집에서 공부할 때도 집중이 안 되면 거실로 나와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참 경이롭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한 배 안에서 나왔는데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요? 이 다름으로 한동안은 많이 부딪히고 갈등하기도 했습니다. 큰아이가 대학생활을 위해 집을 비운 4년여의 공백이 이 둘의 다른 점을 더욱 부각시킨 듯도 합니다. 한동안 아이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J형인 큰아이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동적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습니다. 하루 계획은 물론 일주일, 그리고 한 달 계획을 세워놓고 나름대로 철저하게 움직입니다.


P형인 동생은 이런 언니가 답답하기만 합니다. 날이 좋은 날은 언니와 함께 커피숍도 가고 놀러도 가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돌아와서 집중을 잘 할 수 있는데 언니의 계획 속에는 없는 일입니다. 결국 언니는 언니대로 자유로운 영혼인 동생을 이해할 수 없고, 동생은 언니가 자신을 생각해 주지 않는다며 섭섭해 합니다.


F형인 작은 아이는 수시로 감정 기복이 심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공감해주지 않으면 섭섭해 합니다. T형인 큰아이는 왜 그런지 원인을 분석하고 설명해주는 것에 몰두하지요.  나름대로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도 합니다. 동생은 해결책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공감해 달라고 말합니다. 이 또한 잘 맞지 않습니다.


그런 둘이 지난 9월에 일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2박 3일의 짧은 여정이기는 했으나, 집 밖으로 나가 온전히 다른 세상에서 보낸 둘만의 시간이었습니다. 많이 염려스러웠습니다. 혹시 싸우기라도 하면 어쩌나. 그러나 엄마의 이런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서로 다른 성격은 여행 계획에서부터 빛을 발했습니다. 즉흥적인 동생은 언니보다 오히려 세부적인 계획을 세웠습니다. 언니가 깜짝 놀랄 정도로. 거기에 언니는 큰일들을 처리해 나가면서 둘은 자신들의 여행을 그려나가고 있었습니다. 참 보기 좋더군요.


그래도 걱정스러운 마음에 중간 중간 체크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너무나도 잘 지내고 있었고, 마냥 행복해 보였습니다. 무사히 2박 3일의 여행을 마치고 이것저것 선물을 사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다시 가고 싶냐고 물으니 큰아이는 엄마와 함께라면 가겠다고 말합니다. 아무래도 동생을 챙겨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겠지요. 작은 아이는 너무나도 선뜻 언니와 또 가고 싶다고 합니다. 매우 만족스러웠던 모양입니다. 여행 보내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2014년에 쓴 박사논문 제목은 『MBTI 성격유형별 글쓰기 전략』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 일이네요. MBTI가 이렇게 유행할 줄 알았다면 책을 냈을 텐데.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계를 그어놓고 그 이상 행동하지 않았던 지난날에 대한 후회입니다.


논문 서론에 우리가 성격에 관심을 갖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사람들 간에 생기는 차이를 이해하고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생산적으로 통제하여 개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물론 MBTI로 성격을 분석하는 것이 완전히 과학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성격을 이해하는 과정은 필요합니다. 성격을 알면 우월한 기능은 더욱 발달시키고 열등기능은 보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가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여행이라는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서로 다른 점을 보완하고 균형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달라졌습니다.


작은 아이는 언니 바라기가 되었고 언니를 닮아가려 노력합니다. 언니처럼 정리정돈하고 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 이제는 침대를 정리하고 학교에 갑니다. 놀라운 변화 중 하나입니다. 큰 아이도 작은 아이가 갖고 있는 통통 튀는 아이디어와 열정을 부러워합니다. 그렇게 자매는 서로의 장점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이만하면 되었습니다. 나중에 엄마 아빠가 없어도 서로 의지하고 챙겨주면서 그렇게 살지 않을까요? 누군가 내편이 있다는 든든함. 그거 무시할 수 없거든요. 부모로서 가장 바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소위 말하는 ‘핵개인’의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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