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몸살 - 소속감 ․ 사랑욕구
조용한 화이트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 끙끙 앓았습니다. 남편의 감기몸살이 저에게 옮겨와 밥 먹고, 약 먹고, 그리고 약기운에 쓰러져 잠만 잤습니다. 트윈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는 엄마 아빠를 보며 아이들이 요양원 같다고 놀립니다.
큰 아이는 지난주부터 체력학원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경찰공무원시험은 일반 공무원시험과 달리 체력을 봅니다. 각 청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지만, 100미터, 1000미터 달리기, 윗몸 일으키기, 좌우 악력, 팔굽혀 펴기 등 5개 종목에 걸쳐 10점에서 1점까지 평가됩니다.
필기 합격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이어서 바로 체력시험을 봐야 하기 때문에 훈련을 해야 합니다. 체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기 때문에 필기시험 점수를 높이자는 것이 아이의 전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력 역시 중요한 관문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학원을 다녀야 합니다.
채용과정에서부터 남과 다른 특별한 경험을 준비하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조금 안쓰럽기도 합니다. 본인이 원한다고는 하지만, 만만치 않은 길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 볼 수밖에 없네요. 한 조직에 소속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입니다.
매슬로우에 의하면 인간이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와 안전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소속감 ․ 사랑욕구를 추구한다고 합니다. 이는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나 연인 관계를 맺기를 원하것과 특별한 집단에 소속되기를 바라는 것을 말합니다. 아이가 그곳에 무사히 안착하여 소속 욕구를 잘 충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작은 아이는 이번 방학에 ‘윈터 스쿨’이라는 관리형 독서실을 가기 위해 준비 합니다. 우선 학습계획을 짜고, 인강(인터넷 강의)을 등록하고, 책을 주문하고, 중요하고 분주한 시간을 보냅니다.
학교에서 자습을 하지 않는 것도 큰아이 때와 다른 신박한 경험입니다. 8년 전 큰아이 때만 하더라도 밤 11시까지 야자를 하는 것은 필수였습니다. 여기에 주말, 주일에도 자습을 하기위해 학교에 갔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학습 환경은 달라졌습니다. 이제 자습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으로 바뀌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기 중 자습은 물론 방학 중에도 개인적으로 공부를 합니다.
그 결과 관리형 독서실이라는 새로운 사교육 시스템이 등장했습니다. 일반 스카(스터디 까페)와는 또 다릅니다. 학습 분위기를 위해 많은 부분들이 제한되고 통제되는 시스템입니다. 우선 휴대폰이나 아이패드 등의 전자기기 반입이 금지됩니다. 졸면 깨워주기도 하고, 딴 짓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기도 합니다. 만약 공교육에서 이렇게 한다면 인권침해니 뭐니 난리가 났을 겁니다. 돈을 들여가면서 이러한 통제를 받으려 한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 합니다.
아침 8:30분부터 밤 10시까지 정해진 계획표대로(본인이 짠 학습계획) 진행되고, 점심 저녁 식사도 신청해서 먹을 수 있습니다. 덕분에 저는 아이가 학교 다닐 때보다 편해졌네요.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불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신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률도 만만치 않아 한 달 전에 발 빠르게 신청하지 않으면 그나마 TO도 없습니다. ENFP 인 아이가 강압적인 통제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원해서 신청한 만큼 그 시간을 잘 견뎌 줄 것이라 믿어보려 합니다.
그 와중에 아이는 고등학교 마지막 축제를 준비합니다. 동아리에서는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나왔던 달고나 게임을 한다고 합니다. 연습을 해야 한다면서 도구를 잔뜩 싸가지고 왔습니다. 워낙 손재주가 없는 아이여서 걱정을 했는데, 한 번에 별모양 달고나를 완성했다고 좋아합니다. 어질러져 있는 주방은 고스란히 엄마 몫이 되었네요.
저는 학생들의 성적을 처리하느라 조금 분주한 한 주를 보냈습니다. 성적을 처리할 때가 되면 안타까운 학생들이 있습니다. 열심히 수업에 참여해서 눈여겨 본 학생인데 중간, 기말고사 결과가 좋지 않아 점수를 줄 수 없는 학생이 꼭 나옵니다. 반면에 강의실 맨 뒤에서 존재감 없이 앉아 있다가 시험을 잘 봐 높은 점수를 받아가는 학생도 있지요.
이제 정말 한 학기가 끝났습니다. 성적처리와 입력까지 마무리하고 나니, 남편이 옮겨 준 몸살이 기다리고 있네요. 이번 학기는 아프지 않고 잘 마무리 할 수 있나보다 라고 생각 했는데 결국 지독한 몸살과 연휴를 함께 하고 말았습니다.
그 몸으로 크리스마스 전날에는 ‘서울의 봄’을 관람했습니다. 작은 아이 시험 이후로 미루어 놓은 영화여서 놓치기 전에 꼭 봐야만 했습니다. 정말 잘 만든 영화입니다. 141분의 러닝타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했습니다.(영화 리뷰는 블로그에 올릴 예정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지인이 선물해준 뷔페초대권이 있어서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몸이 좋지 않았던 남편은 영화를 보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더해져 제대로 먹지도 못합니다. 저도 집에 와서 소화제를 먹었습니다.
간만의 화이트크리스마스, 큰아이는 남자친구와 데이트 하러 나가고, 작은 아이도 친구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우리 부부는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앓았습니다. 결코 젊은 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이 몸살이 우리에게 쉬어 갈 타이밍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합니다. 내년에는 남편도 저도 건강을 챙겨야 할 것 같습니다.
컨디션을 회복해서 연말을 잘 마무리하려 합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왔습니다.
이제 아이들과 23년을 돌아보고 잘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