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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헤두안나 Jan 04. 2024

세 모녀의 고군분투 생존기

11화  영업종료  -상호결정론

2024년, 재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새해 소원을 빌었습니다. 아이들은 각자 취업과 입시 성공을 간절하게 빌었고, 남편과 저는 가족의 건강과 더불어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기를 빌었습니다.


큰 딸아이는 본격적인 다이어트에 들어갔습니다. 윗몸일으키기 만점을 위해 당분간 점심만 먹고 저녁은 간편식으로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공부를 하려면 잘 먹는 것도 중요한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작은 아이는 방학을 했습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독서실에 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친구 집에 갔습니다. 강아지 사진을 잔뜩 단톡방에 올립니다. 키우고 싶다는 시그널입니다. 그러나 현재 두 강아지(딸들)를 키우기에도 벅찹니다.


저는 연휴가 끝나고 조금 분주하게 보냈습니다. 새해 계획을 세우면서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을 다시 정리했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왔습니다.




새해 아침에 거울을 봤습니다. 흰머리가 많이 보이더군요. 박사과정을고부할 때  어떤 분이 ‘머리가 나쁜 남자가 공부를 하면 많이 빠지고 여자는 하얗게 센다’라는 말을 해서 웃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공부하기에는 제 머리가 썩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사십대 중반부터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염색을 하지 않으면 보기 흉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주기도 빨라져 한 달에 한 번에서 이제 3주에 한 번씩은 해야만 합니다.


미용실 비용이 만만치 않아 한동안은 집에서 딸에게 부탁하기도 하고, 혼자 해보기도 했습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한 번 가면 몇 시간씩 소비되는 시간이 의미 없게 느껴진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망가지고 있는 머릿결이 보이더군요. 할 수 없이 미용실을 가야 했습니다.


몇 군데의 미용실을 전전했습니다. 이상하게 제가 간 미용실은 얼마 못가 디자이너가 바뀌거나 문을 닫거나 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코로나 상황과 맞물린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지만, 나에게 맞는 단골 미용실에 안착하는 것이 참 어렵더군요.


그러다 집근처 미용실에 멤버십 회원으로 가입하여 정기적으로 염색을 하고 관리를 받았습니다. 예약제로 운영을 하는 미용실이어서 조용하고 한적한 것이 맞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가려고 홈페이지에 들어갔으나 예약 버튼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뭐지? 연휴여서 아예 설정을 하지 않았나? 연휴가 끝나고 다음날 다시 들어가 봤습니다. 그런데 마찬가지였습니다. 할 수 없이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죄송합니다. 고객님! 저희 미용실이 영업을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황당하더군요. 안내 문자도 없었고, 예치금까지 맡겨놓은 상태였습니다. 직원은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 하면서 자기들도 갑자기 통보를 받아 경황이 없다고 합니다. 환불은 80% 밖에 안 된다는 황당한 답변도 들었습니다. 문득 미용실과 헬스클럽은 절대 예치금을 주면 안 된다는 딸아이의 말이 떠오르더군요.


직원은 연동되는 미용실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어서 차를 타고 가야했습니다. 불합리하다는 생각에 마음속에서 분노가 올라왔습니다. 그냥 80%라도 환불을 받고 말까? 아니면 본사에 항의 전화를 할까? 다른 미용실을 가야 한다면 어디로 가야하지? 새해 첫날부터 이게 뭐지? 부글부글 속이 시끄러웠습니다.


그러다 문득 전신 거울 속의 제 모습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새치가 올라와 있는 초라한 모습을 한 여자가 잔뜩 골을 내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보기 싫었습니다. ‘그래 일단 염색을 하고 보자’ 연초부터 갈등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것도 이유였습니다.


안내해 준 미용실을 찾아갔습니다. 미용실은 가끔 딸들과 왔던 패밀리 레스토랑 건물 2층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가보니 레스토랑 자리에 명품 숍이 들어섰더군요.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잔뜩 화가 나 미용실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평일인데도 손님들로 북적였습니다. 사실 기존 미용실은 집에서 가까운 것도 있었지만, 예약제여서 한가한 것도 선택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한 번 미용실에 오면 2~3시간은 기본으로 소비됩니다. 그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1인 중 하나로 이렇게 북적이는 미용실에 대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그래 오늘 예치금 다 쓰고 가자’ 갑자기 당한 불합리한 상황으로 인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습니다. 이를 눈치 챈 것일까요? 직원들이 빠르게 대응해주었습니다.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서비스를 받았습니다.


염색뿐만 아니라 손 마사지, 지압, 승모근 마사지, 두피 상태 진단 등 다양한 서비스를 해 주더군요. 결국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에 제 마음이 서서히 녹기 시작했습니다. 참 쉬운 고객입니다. 그렇게 다시 돌아보니 미용실 분위기도 화이트 톤의 모던한 인테리어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머리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미용실 문을 나서면서 처음 들어설 때의 반감은 온데간데없고 다시 방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의 행동은 행동, 인지, 환경 세 요인을 모두 수반한다는 이론이 알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 1925~2021)의 상호결정론(reciprocal determinism)입니다. 즉 환경자극이 인간 행동에 영향을 주지만 신념, 기대 같은 사람요인 역시 인간의 행동 방식에 영향을 준다는 가정입니다. 단순히 환경 사건에 반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환경을 창조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환경사건이 어떻게 해석되고, 조직화되고 다루어질 것인가를 결정하는 인지요인 즉 생각이 중요합니다. 또한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 긍정적인 보상을 얻게 되면 행동은 더욱 강화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루아침에 종료된 미용실, 황당하고 부당한 경험에 대해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본사에 항의 전화를 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하루 종일 속이 시끄러웠을 겁니다. 특히나 갈등상황을 잘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니 며칠은 힘들었을 테지요.


제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영업종료를 통보받은 미용실 직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냥 집으로 가기 아까워(워낙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서) 남편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습니다. 얼큰한 동태탕과 시원한 생맥주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오늘 저는 부정적 상황에서 최적의 선택을 했고, 달라진 상황을 다시 보게 되었고, 최상의 결과를 얻었습니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오늘 하루를 아니 2024년 시작을 지켜 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 긍정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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