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산타클로스 울막내 - 아들러의 출생순위
‘울막내’
제 휴대폰에 저장된 막내 동생 네임입니다. 정확히 8살 터울인 남동생입니다. 큰딸과 작은딸아이의 나이 차이와 같습니다. 오늘은 세 모녀 이야기에서 조금 벗어나 울막내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막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동생이 태어나던 장면을 기억합니다. 당시만하더라도 시골은 출산을 위해서 병원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장녀인 저는 집에서 출산하시는 어머니의 고통을 함께 경험해야 했습니다. 아마 형제들 중에 저만 그 장면을 목격했던 것 같네요.
그렇게 태어난 울막내는 정말 귀여운 행동만 했습니다. 얼굴도 잘생기고 저희 사남매 중 유일하게 유치원을 나온 재원(?)이기도 합니다. 매우 똑똑하기도 해서 유치원을 졸업할 때 대표로 답사를 하고, 초등학교 내내 일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공부를 잘 했습니다. 조금 욕심이 생겼습니다. 대전에서 직장을 다니던 저는 도시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동생들과의 동거가.
그러나 큰 오산이었습니다. 규모부터 다른 도시학교에서 시골 출신의 학습능력은 빛을 발하지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한창 예민한 시기의 중2 남자아이가 정착하기에는 누나의 곁이 안전한 공간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저대로 직장생활에 적응하느라 동생의 학업과 학교생활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습니다.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조금만 신경 써 주었더라면 더 좋은 학교에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이후로 저는 서울로 발령이 났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임신과 IMF로 인한 구조조정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대전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동생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신혼집에서 동생들을 데리고 살았습니다. 그러고보면 남편이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함께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주었으니 말이지요.
알프레드 아들러에 의하면 가족구도(family constellation)와 출생순위(birth order)가 성격에 영향을 준다고 말합니다. 첫째 아이는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다가 동생이 태어나면 ‘폐위된 왕’이 되어 열등감을 심화시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리더십과 권위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상실에 대한 고통을 경험했기 때문에 동생들에게 더 동정적이 됩니다.
막내 아이는 부모의 과잉보호 속에서 자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므로 과도하게 의존적이거나 문제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에서 막내가 정상에 서는 영웅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과거 젊은 시절에는 알프레드 아들러가 말한 것처럼 저도 첫째의 역할을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은 제 살기에 급급해서 두루두루 돌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 일을 지금 막내가 하고 있습니다. 고향에 혼자 계신 어머니도 막내를 낳은 것이 당신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하십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동생은 이제 40 중반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결혼도 하고 너무나도 예쁘고 귀여운 두 아들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하는 일도 잘 되어 우리 사남매 중 가장 재력가가 되어 있습니다. 아들러가 말한 긍정적인 측면으로 잘 자라주었습니다.
막내에게 학창 시절의 기억이 생생한가 봅니다. 부모님을 대신해 준 누나가 고맙다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줍니다.
“누나 내일 백화점 가자. 내가 코트 한 벌 사줄게.”
서울에 사는 여동생이 내려와 막내 동생 집에서 모였습니다. 지하철을 타면 30분. 갑자기 불어 닥친 한파에 매우 쌀쌀한 날씨였습니다. 굳이 역에 마중을 나온 동생이 차에 올라타는 저에게 던진 말입니다.
“아냐 됐어. 코트는 무슨”
다음 날 정말로 백화점에 가자며 집으로 데리러 왔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맘껏 고르라고 합니다. 마냥 받기만 하는 것이 미안해 망설이는 저와 여동생을 다그칩니다.
결국 가격대가 만만치 않은 숏 패팅을 얻어 입었습니다. 더 좋은 옷을 사주고 싶어 하는 동생의 마음이 전해져 코끝이 찡합니다.
오늘 기말시험 감독을 위해 학교에 갑니다. 막내가 사준 이 옷을 입고 가려 합니다.
올 겨울 울막내 덕분에 참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네요. 이 패딩을 탐내는 딸내미들을 방어하면서 잘 입어 보렵니다.
울 딸들도 엄마와 삼촌처럼 자매가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잘 살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