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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헤두안나 Jan 22. 2024

세 모녀의 고군분투 생존기

13화  동행  - 정상적 공격성

작은 아이는 이번 방학에 혼자 수학을 공부하겠다고 했습니다. 다니던 학원 시간이 다른 학원과 겹치기도 했고, 부족한 국어와 영어를 보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강을 들으면서 혼자 공부하던 아이가 도저히 안 되겠다고 SOS를 칩니다.


결국 다음 주부터 과외를 하기로 했습니다. 남편이 취미로 가르치고 있는 의대농구동아리 학생을 급하게 섭외했습니다. 일단 실력도 실력이지만 성격이 좋아야 한다라는 것이 첫 번째 조건이었습니다. 하기 싫은 일은 절대 하지 않는 아이에게 잘 맞을 수 있는 선생님을 섭외하느라 남편이 조금 고생을 했습니다. 다음 주 선생님과의 만남을 기대합니다.


조용한 일상에 낯선 상황이나 누군가 침투해 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입니다.


“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누수공사로 인하여 1주일간 소음과 불편을 끼쳐드리게 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윗집에서 누수공사를 한다는 안내문입니다. 지독한 위층 사람을 만나 지난 2년 동안 누수문제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분쟁조정까지 간 후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타인과 겪는 갈등사항이나 감정싸움에 대처하는 것이 미흡합니다. 그래서 강한 사람들은 되도록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위층 사람은 상대하기에 너무 강성이었습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합리화로 회피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바로 ‘정상적 공격성’이었습니다.




'정상적 공격성(normal aggression)'은 자신을 지키고 부당함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공격성은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오지만 엄밀히 공격과는 다릅니다. 특히 ‘정상적 공격성이라는 것은 스스로 존엄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 방어 기제입니다.


공격성의 시초는 태아가 어머니 뱃속에서 발로 차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이는 바깥세상을 이겨내기 위해 분출하는 적극적인 에너지입니다. 나를 지켜주는 에너지가 내면화된 것이 바로 정상적 공격성입니다.


정상적 공격성은 7~8세 즈음에 발달합니다. 이것이 잘 발달된 아이는 남을 지나치게 공격하지 않고 스스로의 감정도 안정적으로 유지합니다. 그러나 충분히 발달되지 못하면 거절을 잘하지 못하거나 본인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결국 이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되면 억울함과 자책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자존감이 낮아지게 되는 것이지요.


정상적 공격성은 세상으로부터 나를 안전하게 지키고, 내면의 굳건한 지지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주위를 보면 '만만하지 않으면서도 온화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바로 이 정상적 공격성이 발달된 사람입니다.


정상적 공격성이 부족해 긴 시간 동안 피해를 당한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문제가 공동주택에서 있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누수도, 층간소음도 그 피해가 고스란히 아래층에서 떠안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항의 방문을 하면 주거침입이 될 수 있고, 누수도 해결해 줄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만 합니다.


3월 임용시험 날까지는 우리 집 시계는 되도록 큰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자고 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누수여부를 다시 확인하고, 또 도배공사가 이루어지게 되면 아이는 또 신경을 쓰겠지요. 그냥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하도록 도와주고 싶은데 여의치가 않네요.


가장 중요한 시기에 불가피하게 당하는 피해에 다시 화가 치솟아 올라옵니다. 그래도 이만하기 다행이고 어쨌든 문제도 해결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웃을 잘 만나는 것도 조상 덕을 잘 쌓아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일요일 저녁, 남편과 작은 아이와 함께 시내로 나갔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대전입니다. 대전에는 ‘성심당’이라는 유명한 빵집이 있습니다. 성심당 주변으로는 진풍경이 펼쳐집니다. 빵을 사기 위해 몇 겹으로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길게 서 있는 줄을 보고 나간 김에 빵을 살까 하던 마음을 바로 접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서 있는 사람들이 그저 신기합니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열정이 부럽기도 합니다.    


연애시절 남편과 데이트하던 곳을 추억해 보았습니다. 너무 많이 변해서 그 흔적을 제대로 찾는 것이 쉽지 않더군요. 그래도 단골로 가던 식당과, 다른 용도로 변해버린 극장 건물 등 소소하게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의 추억 여행에 동참한 MZ세대 아이가 신경이 쓰입니다. 일주일 동안 공부하느라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주자고 나온 외출인데, 오히려 아이에게 피로를 얹어 준 것은 아닌지 살짝 걱정스럽습니다. 그래도 군소리 없이 엄마 아빠의 기분을 맞추면서 동행합니다.  


시장골목에 있는 원조 치킨 집을 찾아갔다가 공간이 협소하고 쾌적하지 않아 분점을 찾아갔습니다. 우리 부부는 생맥주를, 아이는 콜라와 함께 치킨을 먹었습니다. 역시 치맥은 국룰입니다.


문득 10여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5일장이 서는 날이면 불콰하게 술 한 잔 걸치신 아버지의 손에는 종이봉투에 싸 온 통닭 두 마리가 들려 있었습니다. 우리 사 남매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 먹어치우곤 했지요. 지금은 각종 소스와 양념으로 다양한 맛을 내고 있지만 사실 그 맛을 느낄 수 없네요. 맛도 사람도 변해서일까요?



남편은 아이와 진솔한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진로를 결정하고 달리고 있지만 많이 불안해하는 것 같아 걱정스러웠거든요. 다행인 것은 자존감이 낮았던 아이가 조금씩 회복하고 있는 듯합니다. 자신이 대학생이 된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견디고 있다고 하네요.


목표로 하고 있는 대학도 학과도 엄마 아빠 입장에서는 많이 내려놓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미안해하는 아이를 보면서 예쁘게 잘 자라고 있구나 안심합니다. 오늘 짧은 외출은 행복한 동행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의 꿈을 응원해 주기로 했습니다. 이 긴 터널을 무사히 지나 아이가 꿈꾸는 세상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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