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상상 - 회복탄력성(resilience)
작은 아이 기말고사가 끝났습니다. 우리 가족은 저의 늦은 생일 파티를 겸해 외출을 했습니다. 큰 아이의 임용시험, 그리고 이어지는 작은 아이의 모의고사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짧은 외출로 대신합니다. 이렇게라도 기분전환이 필요합니다.
남편이 예쁜 운동화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이 기특했던 모양입니다. 남편에게 고맙습니다. 간단히 쇼핑을 마치고 작은 아이가 추천해 준 칼국수 맛집으로 향했습니다. 이 식당은 우리 가족 모두를 만족시켰습니다. 매운맛에 얼얼한 입속을 달래느라 고생하기는 했지만, 입맛 까다로운 남편도 매우 만족을 눌렀습니다.
식당을 나와 다음으로 향한 곳은 LP로 음악을 들려주는 카페였습니다. 카페 이름은 상상(相相) DJ 박스가 있고, 음악을 신청할 수 있고, 7080 음악을 LP판으로 들을 수 있는 그곳은 엄마 아빠를 위한 아이들의 선택이었습니다. 조금 이른 시간의 카페는 우리 가족 이외에 손님이 없었습니다. 덕분에 마음껏 음악을 신청해서 듣고, 아이들은 직접 DJ가 되어보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곳을 알고 있는지, 고맙고 기특합니다. 딸들 덕분에 우리 부부의 취향저격 데이트 장소를 발견했습니다. 다시 찾을 것 같습니다. 딸들이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큰 아이의 지원 경쟁률이 나왔습니다. 서울 31.9:1, 인천 29.2:1, 경기남부 24.6:1. 다행히 경기 남부청 경쟁률이 가장 낮습니다. 눈치게임에서 나름 선방했습니다. 마음을 조금 쓸어내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은 점수대가 높기 때문에 아이는 긴장을 놓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한 문제로 당락이 좌우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이지요.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을 응원합니다.
작은 아이는 가고자 하는 학교와 학과가 명확했습니다. 3년 동안 아이는 화장품 공학과를 바라보고 모든 세특을 하나로 맞추었습니다. 작년 이맘때쯤 선배들이 주최하는 학과 설명회가 있어 저와 함께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때도 비가 내렸던 것 같습니다. 비를 맞으면서 교정 투어를 하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행사는 2시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학과에 대한 안내, 입학을 위한 전략 등 선배들에게 궁금한 점을 묻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아이의 의지는 더욱 굳어졌습니다. 반드시 이 학교에 들어오겠다고 말이지요.
이후 1학년 내신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에 2학년 2학기 성적을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눈에 띄게 오르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향상되었습니다. 3학년에 올라와 담임선생님과 입시상담을 하면서 지원은 할 수 있지만, 다소 상향지원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3학년 1학기 성적이 관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말고사까지 마무리한 지금 다행히 성적이 향상되었습니다. 이제 나머지 생기부를 채우면 학종으로 소신 지원을 할 수 있겠다고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변수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아이가 가고 싶어 하던 학과가 다른 학과와 통폐합이 되면서 학과 자체가 없어진 것입니다. 말로는 2학년부터 세부전공을 할 수 있다고 했지만, 기존에 있던 생물공학과로 합쳐지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한 학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대학에 있으면서 이런저런 일들로 통폐합되는 학과를 보았고 경험했습니다. 그래도 학과명에서라도 통폐합의 흔적을 남기고자 고심이라도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 학과는 기존의 생물공학과로 완전 병합이 되면서 인원도 대폭 줄었습니다.
통폐합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지만, 당초 한 달 전만 해도 이번 연도까지는 변동이 없다고 했습니다. 모집인원도 발표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에 맞추어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6월 30일 자로 변동사항을 발표한 것입니다. 생긴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학과가 이렇게 쉽게 없어질 수도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프라임 사업 지원이 끝나면서 학과의 운명도 끝나고 마는 이런 어이없는 정책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화가 났습니다.
아이는 퉁퉁 부은 눈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야자도 빼고, 수시도 지원하지 않겠노라고 말합니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잠만 잡니다.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하나? 차라리 입학하기 전에 이런 결정이 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자. 성적이 올랐으니 다른 학교 비슷한 전공을 지원해 보자. 그러나 방향을 잃은 아이에게는 공허한 위로였습니다. 밝고 명랑하던 아이가 시름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보니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기성세대가 저지른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 엄마 어제 우울하게 있어서 미안해요”
“ 다시 힘내볼게”
아침에도 침울한 표정으로 학교에 갔습니다. 세미나 일정이 있어 분주하면서도 마음은 온통 아이를 향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특하게도 이렇게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다시 힘을 내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자고 했습니다. 오히려 이 상황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고 말이지요. 큰 아이는 동생이 대견하다고 말합니다. 본인 같으면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힘들었을 것 같은데, 회복탄력성이 대단하다고 말이지요.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크고 작은 역경 ․ 시련 ․ 실패에 대한 인식을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마음근력을 의미합니다. 극복력, 탄성, 탄력성, 회복력 등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이 개념을 처음 제시한 학자는 Werner(1989)입니다. 그는 1992년 Smith와 함께 진행한 연구결과를 발표합니다. 하와이의 카우아이 섬에서 1955년 출생한 505명을 대상으로 35년에 걸쳐 연구한 결과, 회복탄력성은 선천적인 기질뿐만 아니라 양육 환경에 의해서 후천적으로 개발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사람에 따라 시련에 대한 탄성은 다릅니다. 실패와 시련으로 인해 좌절하더라도 강한 회복탄력성이 있는 사람들은 원래 있었던 위치보다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신에게 처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습관이 구축되었기 때문입니다. 감정적 에너지를 부정적인 것에 소모하지 않고 문제해결에 대한 집중에 사용하기 때문에 회복탄력성이 더욱 향상되는 것입니다. (김주환, 《회복탄력성》, 위즈덤하우스, 2011.)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회복탄력성이 높은 편인 것 같습니다. 정말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이 좌절을 딛고 더 도약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엄마 아빠의 믿음 속에서…….
밝게 펼쳐질 아이들의 미래를 상상(想像) 해 봅니다.
오늘도 세 모녀의 고군분투는 진행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