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나는 영문과에 올 생각이 없었다. 영문도 모르고 영문과 왔다는 게 나에겐 말장난이 아니다. 시작부터 삐걱했다. 삼수에 지쳐있던 나는 학교에 맞춰서 과를 썼다. 국제어문학부. 입학할 때까지도 국제 어문을 배운다는 생각을 못 했다. 아쉽고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학부로 들어왔으니 1학년이 끝나면 과를 선택해야 했다. 끌리는 게 없어서 합격선이 제일 높았던 영문과를 선택했다. 같은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복학하고 본격적으로 영문과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또다시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영문과의 정식 명칭이 영어영문학과였다. 영문학과 함께 영어학을 배워야 했다. 소설, 시와 함께 영문법, 발음의 역사 등을 배워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과에 만족하지 못했는데 더더욱 정이 붙지 않았다.
4학년이 되어서야 나에게 맞는 영문과 수업을 찾았다. 현대문학 강의였다. 범죄, SF, 흑인 인권, 디아스포라 등 현재에도 직면한 이슈가 주제였다. 술술 읽혔다. 시험 범위가 아닌 작품도 찾아가며 읽었다. 내가 본 영화의 원작 소설도 이따금 튀어나와 철렁하게 했다. 졸업과 취업 준비만 아니었으면 대학원에 끌려갈(?) 뻔 했다. 어쨌거나 전공에서 자신 있게 하나쯤 말할 수 있는 주제가 생겨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