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에 염증을 느낀 나는 이중전공은 신중하게 고르리라 마음먹었다. 당시 기자를 꿈꾸던 나는 기자 생활에 도움이 되면서도 흥미도 가질 만한 전공을 찾았다. 1순위는 역시 미디어학이었다. 하지만 성적이 모자라 지원할 수 없었다. 차선책이 사회학이었다. 사회학은 모호한 학문이라고 생각했다(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앞에 갖다 붙이기만 하면 그럴듯한 세부 전공이 된다. 그 말인즉슨, 넓고 얕은 기자에 최적화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별 과목이 다 있었다. 종교사회학, 범죄사회학, 경제사회학, 여성사회학……. 그중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뜻밖의 과목이었다. 과학기술사회학, 누가 봐도 이과다운 과목이다. 수강 신청을 하면서도 반신반의했지만, 첫 오리엔테이션 강의를 들으며 완전히 빠졌다.
수학이 ‘1+1=2’라는 수식을 배운다면, 과학기술사회학은 ‘1’이라는 숫자와 ‘+’라는 기호의 생성 배경을 배우는 식이다. 과학이 지동설의 이유를 배운다면, 과학기술사회학은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패러다임이 넘어가는 그 순간의 사회상을 배운다. 매력적이지 않은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졸업에 가까울 때 과목을 만나 더 깊게 파고들지 못했다. 까딱 잘못했으면 대학원으로 끌려(?)가는 수도 있었다. 내가 선택한 학과는 차선책이거나 부화뇌동하여 결정했던 식이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맞는 부분이 있었고, 깊게 빠진 한 구덩이는 반드시 있었다. 어느 길을 가도 길은 길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