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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Feb 06. 2023

30대가 수능을 준비한다고? (1)

끝내 집착일까 집념이 될까

 22년 11월 말, 김장철이었지만 햇살은 따스했다. 가을 같은 겨울을 한 창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가족들과 삼삼오오 모여 김장을 담궜다. 배추 포기수가 그리 많지는 않아서 대책없이 큰 일은 아니었지만. 힘들 수밖에 없었다. 김장을 40년 넘게 해온 고모에게도 사소한 일이 아닌데 나에게는 어땠을지. 황금 같은 일요일이 화살같이 지나갔고 몸이 축이 났다. 일부러 검정옷을 입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고춧가루가 옷에 덕지덕지 묻고 난리도 아니었다. 대강 물로 헹궈내보지만 엉망이고. 뒤에 이어진 김장의 클라이 막스 수육을 삶고. 부위는 전지. 맥주에 요리하면 더 부드럽다나 뭐라나. 별 기대를 안 했는데 식감이 보들보들 하긴 했다. 가족들과 한 창 떠들다가 잠깐의 정적이 오갔다. 불현듯 티비에서 뉴스앵커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됐다. 수능시험에 대한 내용이었다. 순간 가슴이 찌릿해졌다. 요새 수능을 재응시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졌단다. 메디컬계열을 노리고 공부한다고.


 집착과 집념은 서로 다르다. 때로는 집착이 집념으로 변모되기도 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발생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헤매면 집착이고, 끝내 달성하면 집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피상적으로는 그러하다. 이 말에 일부 동의를 한다. 하지만 참으로 결과론적인 발상에 불과하다고. 그런 관점에서 나 역시도 수능에 집착했던 시절이 있다. 한 인격체의 가치가 한낱 시험의 결과로 메겨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수동적인 사람이었나보다. 그러한 잣대를 부정하는 대신 별 다른 비판없이 수용해버렸다. 학창시절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공부를 못하면 인생이 힘겨워질거라고 그랬다. 이것도 순화한 표현이며, 입시를 그르치면 인생이 무조건 망한다는 식으로 말씀하신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수록 학문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은 사라져갔다. 입시판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패배자가 될거란 불안감이 그나마 살아지는 원동력이 되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됐을 무렵. 중학교때 담임 선생님을 찾아 뵐 기회가 있었다. 학교를 다닐 때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셨고 또한 잘하도록 독려를 많이 해주셨던 분이다. 그 바람에 시험공부를 꽤 열심히는 했던걸로 기억한다. 비록 성적이 잘 나오지는 않았지만. 교대에 진학하고 싶었다. 결국 가고싶은 대학교의 문턱도 못 가보고 경제적인 이유로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고있었다. 엄청난 고찰을 하고 가진 꿈은 아니었지만 나름 간절하긴 했다. 무난해서. 공부 못했다는 소리는 안들을 것 같아서. 또한 교사는 공무원이니까.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니까. 선생님과 간단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미리 준비한 떡을 선물로 드렸다.


"뭐 이런거 다 준비했어. 고맙다. 잘먹을게. 근데 너 화장을 되게 잘했다. 새도우도 화사하고 무엇보다 아이라인을 너무 잘그렸는데? 메이크업쪽으로 일 해보면 어때?"


 욕심은 많았고 잘 하고 싶었다. 그게 문제였다. 오히려 공부를 '너무 잘하고 싶었던‘탓에 불안감이 증폭됐고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유치원 꼬마를 상상해보자. 그 아이가 너무 잘하려고 한다면 보는 우리들까지 아슬아슬하다.어쨌든 집착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계속 수능공부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고 살았다. 이십대의 대부분을 수능 볼 생각만 하고 실제로 응시도 공부도 제대로 못했다. 그로인해 감정은 악순환의 고리를 반복했고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우울함과 싸워야 했다.'언젠가 내 마음이 안정이 되면 수능공부를 다시 해봐야지.'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견뎌왔다. 나이에 상관없이 수능을 보고 명문대에 진학하면 지금까지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믿음. 그러한 기반의 출발점에는 학교 선생님들의 인정이 있었다. 공부만이 답이라고 하셨고 바보같이 그런 줄 알았다. 세월이 흘렀고 세상이 변했다. 정작 내게 꼭 좋은 대학교에 가야만 한다고 했던 분 께서는 막상 그 사실조차 잊으셨는데. 메이크업 기술을 배워보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그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단지 조금 서글프고 허무하다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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