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 하고 싶다면 하는 거지
결국 대학교에 입학은 할 수 있었다. 모 대학교의 간호학과. 수능을 결국 보지 않았고 내 기준에서는 별다른 노력 없이 서류전형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좋은건지 나쁜건지는 모르겠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긴하다. 비록 지금은 다시 휴학을 했지만. 최고의 선택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괜찮은 결정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간호사만이 내 천직이라고 마음을 굳힌 것은 아니다. 예를들어 애초에 간호학과에 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어라든지 의미는 전혀 아니다.
그 시절 수능,그리고 대학교가 주는 의미들에 대해 따져보면 참으로 애석하다. 학창시절 성적표에 매겨진 숫자들은 단순히 수치가 아니었다. 내 자신의 가치에 대한 담론이었다. 성적이 곧 한 사람의 가치와 직결됐다. 수능은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공정한 시험이라는 인식과 개인의 노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결과를 일궈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믿음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은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그렇게 10년동안 암묵적인 패배자인 듯 살았다. 여전히 그때 그 숫자들에 짓눌려 날개를 피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명문대에 가지 못했다는 꼬리표가 혹은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죄책감 같은 것들이. 자신을 혹사시키고 벼랑끝으로 내몰아야만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분명 있었다.
실질적으로 수능을 잘 보면 명문대에 가고, 명문대에 가면 번듯한 회사에 입사하거나 전문직을 얻을 확률이 높아진다. 수능공부를 하는 30대 직장인들의 대부분은 메디컬계열을 노린다고 앞서 말했다. 그 말은 의사나 치과의사,한의사,약사,수의사가 되는게 대부분 사람들의 목표일테지만. '맞아.30대에 10년 정도 공부해서 40대에 의사가 되면 꽤 괜찮은 선택이 아닌가?' 이 현상이 불과 몇년 전만해도 대기업을 관두고 9급이나 7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던 흐름이 오버랩되는것은 무엇일까. 여러 살을 붙여서 그렇지 결국 이 모든건 '밥벌이에 대한 불안' 혹은 '한 개인의 가치에 대한 확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만큼 다양한 직업들과 일이 있다. 그동안 정작 중요한 것들을 바라보지 못했다. 10년 넘는 시간동안 수능에 집착한 나머지 나는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무엇에 기쁨을 느끼고 어떤 순간에 눈물이 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해보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헤메며 돌아간 길에서도 무언가 배울 수 있었다. 첫째, 행복에 닿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둘째,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다른 것들이 나를 결정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