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러질 때 까지 랩을 하겠어
중학교 때부터 에미넴의 팬이었다. 당시에는 활동을 안하던 시기였다. 팬활동을 하려고 해도 정보가 별로 없었다. 미성년자 주제에 19금 딱지가 붙은 앨범도 여러 장 샀다. 지금은 단종됐지만 '에미넴의 고백' 이라는 책도 들뜬마음으로 교보문고에가서 구매했다. 하루종일 그의 음악을 듣는 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인쇄소에 가서 그의 사진을 뽑았고 내 방 벽지에 덕지덕지 붙였다. 또래 친구들은 여느 십 대가 그러하듯 동방신기,슈퍼주니어,빅뱅에 열광하고 있었다. 지금은 추억으로 남았지만 그 때는 왜이렇게 에미넴에 열광했던걸까. 활동도 안하는 지나간 힙합가수를.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에미넴이 갑자기 컴백소식을 알렸다. 그동안 약물에 중독되어있었다고 했다. 끝없는 재활치료 덕분에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하지만 기뻐 할 틈이 없었다. 에미넴은 괜찮아졌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다. 동네 정신과를 가니까 자살사고가 심해서 당장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학업을 그만둘 정도로 심신이 약해졌고, 이후에 2년정도 집밖에 나가지 않았다. 끝없는 무기력은 삶의 원동력마저 찾을 힘을 주지 않았다. 평소에 빛나던 눈빛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별이 박혀있다는 소리를 들을정도로 초롱초롱했는데, 초점잃은 흐리멍텅한 시선만이 거울속에 보였다.
스무살이 됐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몸무게가 늘었음에도 쇼핑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입고나갈 옷이 거의 없었다. 여름에 유일하게 입던 초록색 바지. 그러던 어느 날. 에미넴이 한국에 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장소는 하필이면 또 잠실이었다. 평생을 살아온 터전. 그때는 롯데타워가 완공되기 전이었다. 가고 싶지만 갈수가 없었다. 태어나서 미치도록 좋아해본 첫 가수인데, 그런 사람의 공연에 갈 힘도 없을정도로 피폐한 상태였다. 잊어버리고 싶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공연 날짜까지 카운트를 세고 있었다. 공연 당일이 됐고 괜히 가족들에게 짜증을 냈다. 아버지는 왜 그러냐고 했고 남동생이 상황을 설명해줬다. 사정을 들은 아버지는 낡은 트럭을 밟아서 잠실종합운동장에 당장 데려다 놨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초록색 칠부바지를 입고 뛰어갔다. 아직도 그때의 황홀함을 잊지 못한다. 2년간 멈춰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희망을 본 순간이다.
공연 피날레에는 lose yourself가 흘러나왔다. 쉬는시간에도 급식을 먹으면서도 이어폰을 꼽고 수천 수만번은 들은 노래였다. 가사를 따라부르는데 시큰한 마음이 눈물을 냈다. 그리고 공연장에 있던 모든사람들이 놀랄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에미넴이 두 팔로 하트모양을 만든 것이다. 평소에 무뚝뚝한 사람인데 이렇게 까지 하는게 참 놀라웠다. 아마 한국에서의 공연이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환호했고 그렇게 공연의 막이 내렸다. 에미넴을 봤다고 해서 병이 순식간에 좋아지진 않았다. 그 이후로도 긴시간 터널속에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 날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미국 내에서도 투어를 잘 안하는 가수가 한국에 오다니. 벌써 10년도 지난 이야기이지만 희망을 명확하게 봤다.
에미넴에게 랩은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 처럼 앞으로 글로 내 자신을 나타내고 싶었다. 그만큼 노력을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하겠지만. 아직 부족하고 쏟아내야 할 수 많은 문장이 남아있다는걸 직감한다. 그의 음악을 좋아했 던 이유를 대보라고 한다면 끝이 없을 것이다. 반항적인 감정을 대리만족 했다거나, 무의식에 쌓여있는 화를 표출 할 수있는 수단이었거나. 이유는 여러가지가 될 수 있을 테지만. 어찌됐든 그의 행보를 지켜보는 팬 중에 한명이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생각날 때마다 여전히 그의 음악을 듣고있다. 그 중 'Till i collapse'라는 곡에는 크게 영감을 준 가사가 있다.
till the day, that I drop you'll never say that I'm not killin them.
어떻게든 잘 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뭐가 됐든 '너무 잘' 하고 싶었다. 다른사람들의 반응에 일희일비 하며 시작도 못했던 나에게는 큰 울림을 줬다. 랩을 뭐같이 만들어 놓는다는 말을 듣더라도 자신은 계속 랩을 하겠다라니. 에미넴은 팬과 안티가 반이란 말이 있을정도로 이슈가 많았던 래퍼다. 그게 잘했냐 못했냐를 떠나서 최소한 그는'했다'. 그에 비해서 나는 시작조차 못했다고. 그를 처음 만났던 스무살 2012년으로 돌아가본다. 반드시 쓰러질 때 까지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살 것이다. 아직 펜과 종이가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