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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Mar 06. 2023

사랑받고싶어서 이별을 고한다

최악의 실수를 반복하면서

 J는 느낌있는 음악과 영화들을 많이 알고있었다. 여기서 '느낌이 있다'는 것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마음 속 아주 깊은 공간에 따스한 바람이 스르륵 들어오는 기분 이랄까. 그 누구도 들어오려고 하거나 들어올 수도 없었던 자리였다.  최초의 경험이었고 강렬했으며 어느 순간 모든 사고를 지배하더라. 우리가 연락을 하는 동안 그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다양한 음악과 영상의 링크를 매일 보내주고는 했다. 그의 취향은 곧 나의 취향과도 맞아떨어졌다. 마치 예전부터 알던 인연처럼. Cigarettes After Sex의 Apocalypse역시 그를 통해 알게된 음악 중 하나이다. 이 음악을 반복재생하는 이유는 심플하다. 그가 아직 내 곁에 있다고 믿고싶어서.


 이젠 그에게 닿을 수 있는 방법도 용기도 없다. 3월6일 월요일. 수분을 머금은 새벽공기가 이제 그만 잊고 다시 일상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재촉한다. Apocalypse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어야 그에게서 소식을 올까라며 실없는 웃음을 지어본다. 처음에는 큰 기대가 없었다. 흥미도 다소 크지 않았다. 과거에 끌렸던 사람들과 같이 비교적 단순한 사람일거야라는 편견이 사라지지는 않더라. 여러 대화를 오가던중에 그가 예술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최초로 보내준 영상은 Hands of Bresson. 지루할거란 말과는 정 반대로 커다란 잔잔한 호수에 짱돌을 던진 것 마냥 큰 울림을 줬다. 그에대한 답으로 내가 쓴 글을 공유했다. 평소에 내 글을 지인에게 잘 보여주지 않는 편이다. 그날 따라 왜 제대로 다듬어지지도 않은 엉망진창 글을 공개를 했던건지 알 길이 없지만.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대략적으로나마 알려주고 싶었나보다. 아니면 알아주기를 바랬던걸까. ‘나도 너와 결이 같은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내 글을 "내가 좋아하는 문법이네"라며 펑가했고, '문체'를 말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잠시 긴가민가 하긴 했지만 자신의 의도는 '문법'이 맞다며 확실하게 했다.


"너 무서워."


 메세지를 확인하자 이 관계를 그만 끝내야겠다는 충동이 들기시작했다. 이유는 끔찍했다. 애석하게도 여느 평범한 여자들처럼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붙잡겠지라는 막연한 마음으로. 성숙한 태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이후는 설명 하기도 민망할정도로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대화를 계속 하면 할수록 그에게 닿아있던 내 살결은 갈기갈기 찢겨나갔으며 그 틈 사이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상처에 굵은 소금을 뿌리는 것 같았다. 내가 무섭다는 그의 말은 이해 할 가치도 없는 인간이란 뜻 이었을까. "일주일 버렸다고 생각해."라는 것 역시 그런 의미의 연장이었던걸까. J가 영원히 등을 돌린건지, 언젠가 다시 돌아올지 알수는 없지만. 어쨌든 지금은 나를 스쳐지나간 상태이다. 아마도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 가고있을 것이다. 연기처럼 사라졌지만 나는 아직 그 곳에 머물러있다.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안다. 흩어지는 연기라도 붙잡아보려고 손을 뻗어본다. 허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언제까지 이 곳에 머무를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그만 가던 길을 계속 가야하나보다. 난생 처음 소울메이트라 느껴질 만한 사람만났고 얼마 지나지않아 떠나보냈다. 이건 내 인생 최악의 실수다.


다음에는 조금 더 그럴듯한 핑계를 만들어 볼까한다.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외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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