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용기를 내야 하는 이유
몇 년전 펜더믹이 유행하기 전. 2주정도 미국에 갈 일이 있었다. 사실 이전까지 해외여행에 관심이 별로 없었는데 확실하게 가야 할 이유가 생긴 것 이다.떠나는 날까지도 여러차례 고민을 많이 했다. 가는게 맞는건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평생을 통틀어 최고의 경험을 하고 왔다. 14시간 비행이 곤혹스럽긴 했지만, 다시 그 때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앞으로 10번이라도 더 탈 수 있다. 당시에도 삶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고 역시나 미래는 캄캄했다. 지역만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겨갔을 뿐인데, 그런 체증이 확 풀렸다. 일시적이더라도 그 효과는 대단했다. 미국에서 몇 주 지내니까 마음이 확트이는 기분을 느꼈다. 약간 해방감이라고 해야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웠 던 점도있다. 시카고에 갔을 때 일이다. 지인은 미국에서 10년넘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 전적으로 그에게 여행일정을 맡겼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아무것도 가이드를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Union station에 도착하자 마자 급하게 갈 곳을 구글 맵으로 찾았다. 브런치가 유명하다는 한 식당에 갔다. 나쁘지 않았다. 저녁에는 시카고 피자를 먹고싶었다. 평소에 시카고 피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시카고에 온 이상 한 번쯤은 먹어봐야 하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 동행한 지인이 한 말에 풀이 죽었다.
"먹으면 속이 부담스럽고 가격만 비싸."
그래도 한 번쯤은 먹어보고 싶었다. '너는 미국에 살고 질리도록 먹을 수 있으니까 하는 말이 아니냐.' 속에서 울화통이 났지만 애써 담담한척 그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내 의견을 좀 더 피력했다면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했다. 실망감때문이었는지 기가 죽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재빠르게 동조하고 말았다. 불만을 얘기하면 싸우게 될까봐 껄끄러웠던 것도 있다. 결국 다른 레스토랑에 갔는데 음식이 나쁘지 않았다. 맛있었고 서비스도 친절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이 왠지 찝찝했다. 미국에 와서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기분이 계속 좋았던 와중이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미련이 스쳐지나갔고 아쉬운 감정이 들었다. 애써 괜찮은 척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슬펐다.
살아가면서 이와 비슷한 상황은 얼마든지 마주친다. 잠시 무언가에 홀린 듯 가로막혀 원하는 것을 제대로 추구하지 못한다. 그건 주변사람일 수도 있고, 환경일 수도 있다. 혹은 내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미국에 갔던 자체로 행복하긴 했지만 세세한 과정들은 적지않은 실망감과 후회를 안겨주었다. 좀 더 강하게 나갔더라면 결과가 달랐을까. 의지를 발휘했더라면. 이미 지나간 일이라서 되돌릴 수는 없지만 여러가지 깨달음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시카고에 갔지만 피자도 먹지 못했고, 링컨광장도 구경해보지 못했다. 그걸 온전히 외부의 탓으로만 돌릴 일인지는 의문이다. 그때 여행을 좀 더 풍요롭게 해야겠다는 의지가 더 확고했더라면 결과가 조금 달라졌을까. 내 눈에 시카고는 충분히 멋지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하지만 나는 속이 좁았고 소심했다. 어쩌면 그때는 시카고에 걸맞을 만큼 나이스한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시카고에서 피자를 먹었더라면, 지금 아는 것들은 조금 더 일찍 깨달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