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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Jan 10. 2024

혜화에서 그녀를 만났다

 지금으로부터 일 년 전에 있었던 상황이다. 안지도 오래됐고 한동안 친밀하게 지냈으나 어떠한 계기로 멀어진 L이 있다. 그녀가 마음을 닫게 된 까닭이 무엇 때문인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 왕래가 거의 줄어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혜화에서 즉흥적으로 L을 만나기로 했다. 대학로에 도착하자 많은 인파가 붐비었다. 약속장소에 도착해서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그녀에게 도착했다는 것을 알렸다.이후에는 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식당 안은 한적했다. 여러 대화가 오갔고 내 나름대로 되도록 친근하게 그녀에게 다가가려 노력해봤지만 잘 먹히지 않았다. L은 아직 자질구레한 앙금이 풀리지 않았나 보다. 무슨 말을 건네도 분위기는 다소 냉랭했다. 여느 여자애들이 그러하듯 사소한 자존심을 부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 있다. 소원해졌다가 오랜만에 다시 만난거니까. 그러던 도중 L에게 궁금한 게 생각났고, 침묵이 흐르는 건조한 공기를 깨며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L아, 너는 삶의 낙이 뭐야?” 뜬금 없는 질문에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그러고 이내 입을 열었다. 자신의 삶의 낙은 인간관계라고 대답했다. 흥미로운 대답에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했다. “혼자서는 살아가기 힘드니까. 나는 혼자서는 절대 살 수 없어. 주변 사람들이 반드시 있어야하고 그들에게서 에너지를 많이 얻고는 해.” 나 역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과 함께하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우리는 말그대로 인간이기 때문에 불완전한 존재이고 때로는 온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녀처럼 충분히 다른 존재가 중요 할 수 있다. 허나 지인 혹은 친구나 가족을 아끼고 좋아하는 마음과 그들에게 내 삶을 모두 맡겨버리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을 찾기 위해서는 고독 속에 머물러야 한다.

내면의 나와 만나기 위해서는 '무리 본능'에서 벗어나 고독한 길을 가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L에게 있어 인간관계는 한 줄기 빛이며 삶의 낙이었지만 내게는 꼭 그렇지 않았다. 물론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느껴서는 아니다. 그저 그 자체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다. 인간관계는 중요하다.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부분도 많다.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받는 에너지는 무시할 수 없다.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하지만 무언가 필요하다고 해서 그게 전부라는 뜻은 아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얽매이다 보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다룰 틈이 없어진다. 인간관계는 필요하지만 그게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도 적절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지 않아서 서로가 힘들어지는 경험을 많이 했다. 너무 친해서 경계가 모호해졌고 그래서 서로를 통제하지 못해서 힘겨웠다. 상대방의 상황을 자신의 상황처럼 느끼는 데서 오는 피곤함. L과의 관계에서도 그랬었다. 이 문제에 답이 꼭 하나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내게는 그랬다. 


 이 모든 생각을 구태여 구구절절 표현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는 못했다. 그녀의 답변에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몇 십년을 알고지낸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가치관이 크게 달라졌음을 깨닫게 된 사건이었다. 곁에서 바라보았던 L은 늘 불안해 보였다. 표면적으로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인생의 큰 결정에 대한 문제들이었지만 실상은 그녀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늘 그랬지만 L이 조금 더 편안해지길 바랬다. 그녀를 좋아했고 아꼈기 때문이다 

 

  L은 미래의 선택에 있어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 그녀와 지낼 때 항상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그녀가 아니다. 그녀의 문제 역시 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녀의 문제가 마치 나의 문제처럼 느끼고 말았다. L과 친해질수록 적절한 감정의 경계를 잃어버리게 됐다. 이 사실을 깨달은 이후에 공교롭게도 그녀와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각자 앞으로 가야할 길의 방향이 다소 달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나는 L이 바라는 걸 당장 충족시켜줄 수 있는 친구가 아니었고, 그녀도 그걸 알았는지 금새 다른 인연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크게 탈은 없었다. 


 자신의 삶이 분명하지 않으면 괜한 오지랖을 부리게 된다. 타인과 본인의 인생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당시에 그녀만큼 나도 적잖게 불안한 시기였다. 가뜩이나 힘든데 능력에도 없는 괜한 오지랖을 부리느라 더 괴로웠다. 그 날 혜화에서 본 이후로 L을 만난 적은 없다. L과 멀어진 이후에 그녀만큼 가깝게 지냈던 지인은 별로 없다. 내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사람들과도 적절한 거리를 두게 됐다. 내가 어떤 상황을 편안해 하는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더불어 지내면서도 반드시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의 확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신에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일상이 단출해졌지만 그만큼 피곤함도 덜어졌다.  


  “그래서 너는 인생의 낙이 뭐야?” L이 되물었다. 그에 대한 답으로 잠재력이라고 대답했다. 살아가는게 힘겹지만 그래도 앞으로의 가능성 때문에 희망을 가지며 살고있다고. 혜화에서 L을 만났던 날 비록 그녀를 떠나 보냈지만 내 자신을 만나게 됐다. 그동안 친밀한 관계속에 파묻혀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잠재력이 낙이라는 것은 현재는 날개를 펼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앞으로 얼마나 또 어디로 날아가고 싶은지. 한 번 생각해서 결론이 날 문제는 아닌 듯하였다. 계속 가져가야 할 생각이다. 조금 더 검토해보고 방향을 잡다보면 언젠가 정해지지 않을까 싶다.  

 

  터널은 언제나 끝이 있다. 그 길이가 얼마나 길든지간 에 어둠은 끝이 난다. 그런 마음으로 그동안 힘든 상황들을 견뎌왔다. 고독이란 홀로 있음을 즐기는 것에 해당한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기때문에 누군가 필요하다. 동시에 그 자체를 즐기는 법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혜화에서 만났다. 함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아기자기한 카페에도 갔다.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걸어 가야 할 방향이 달랐다. 그래서 흩어지는 수 밖에 없었다. 한 편으로는 아쉬운 처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목적지가 너무도 달랐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 날 비록 그녀를 떠나 보냈지만 덕분에 새롭게 만난 사람이 있다. 그건 바로 내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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