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소 Mar 04. 2024

행복이란 목적지는 없다

사람은 우울로인해 비로소 기쁨을 느끼는 존재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이 감정을 제대로 인정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수 많은 착오가 발생했다. 가령 사는게 무의미하다는 이유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한다든지.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느낀다는 이유로 모든 일상을 멈춰버리는 일들이 그러하다. 이것은 단순'우울감'이 아니라 병리학적으로 분류되는 '중증도의 우울삽화'이었다. 왜 그런 병을 얻게 됐냐고?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환경적,심리학적,생물학적 여러가지 것들로 인해서.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지금 깨달았던 것들을 조금만 일찍 수용할 수 있었더라면 인생이 조금 달라졌을까.


 늘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왔다. 과거와 현재의 자신이 초라 한 만큼 보상심리인지 모르겠으나 성공에대한 집착은 커져만 갔다. '언젠가는' 기필코 성공하고 말겠어. 과거와 현재보다는 미래가 조금 더 변화의 폭이 클 것이라는 추측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미래조차도 현재와 과거를 동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유기적인 연결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행복으로 도달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를 골라내고 골라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복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 애초에 접근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괜한 목표설정에만 수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갈수록 특정한 직업을 가지면 무조건 행복해질거란 착각에 빠졌다. 되돌아 오는 것은 허망함뿐이었다.


사람은 우울로 인해 비로소 기쁨을 느끼는 존재.

행복은 공기 같아서 마냥 행복하기만 하면 우린 그 존재조차 모르고 지낼 것.


 애초에 행복을 도달점으로 잡고 걸어 가야하는 길은 없다. 상황에 따라서 행복하기 위한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판단으로 무조건적인 행복을 살 수 있는 건 또 아니다.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예를들어 아기를 출산을 했다면 새 생명을 얻은 기쁨과 별개로 그 존재를 책임져야 하는 무거움이 동반된다. 삶은 늘 이런식으로 흘러간다. 답답하고 괴로운 순간이 있기 때문에 사소하고 작은 것들에서 행복의 감정 또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설령 인생이 기쁨과 행복으로만 펼쳐져 있다 해도 정작 우리는 어느순간부터 그 소중함에 익숙해져 모든 것을 온전히 느끼기 어려워 질 것이다. 


 동굴 밖을 나오니까 나를 옭아맸던 밧줄이라 해야하나. 그런걸 다 끊어내버리고 자유의 몸이 된 기분이었다. 수없이 많은 세세한 이벤트가 있었다. 그런 사건들을 하나하나 퍼즐맞추듯이 이어가다보니 전체그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행복을 절대적으로 보장해주는 직업이라는건 없고. 결혼도 그런 비슷한 맥락이고. 계속 만들어가는거지 어떤 통과 의례가 아닌듯하다. 무얼 하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뭐가 됐든 할수있는 것들로 동적인 에너지를 계속 굴리는게 더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행복도 우울도 모두 감정의 영역이란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언제든지 변할 수 있고 그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무엇이든지 간에 기쁨이나 괴로움을 느꼈던 어느 한 지점에만 머물러있으면 불행해질 것이며 발전이 없을 것이다. 삶이 끝나기 전까지 이 과정은 계속 반복된다. 우리는 그저 오늘도 예측불허한 하루를 살아낼 뿐이다. 매번 행복할 수는 없지만 행복한 감정을 비교적 자주 느낄 수는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단 행복해져야한다는 강박부터 버려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공허한 도시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