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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onni side up Oct 18. 2023

가을 상념

뿌리내리는 삶


하루 사이에 제법 찬 바람결과 함께 가을이 찾아왔고, 사뭇 차가워진 날씨는 올 해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파리에 살 때는 이 을씨년스럽고 쓸쓸한 가을이 참 힘들었던 기억인데, 기억에 얹힌 감정은 시간이 지남에 씻겨가기도 하는 건지 요즘은 가을이란 계절이 참 좋다. 코 끝에 느껴지는 찬바람이 머리를 차갑게 해주기도 하고, 올해가 얼마 안 남았다는 적당한 긴장감과 안도감은 주변을 돌아보게 해주니까.


회상에 젖기엔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유난히 2023년 한 해는 마음 힘든 일이 많았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나아진다고 생각할 때면 새로운 일이 터지고, 수습하려고 할 때쯤 방황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으니까. '나름 내 인생의 우기(雨期)를 지금 보내고 있는 중인가 보다'라고 위안을 건네보는 가을이다.




계절이 바뀌었음을 체감하고 며칠이 지났을까, 박서보 화백이 별세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한국의 모노크롬 페인팅 '단색화(Dansaekhwa)' 열풍에 앞장섰던 미술계 거장이기에, 그의 별세 소식에 수많은 기사가 쏟아졌다. 기사 속 밝은 웃음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니,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과 떠나는 순간에도 희로애락을 함께 해주는 사람들을 직접 응대하고 배웅할 수 없다는 것이 인생의 아이러니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쩌면 시작과 끝을 자의(自意)적으로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이 '삶을 살아간다'는 행위를 더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게 하는지도 모른다고 느낀다.


흔히들 박서보 화백을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라고 부른다.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 박서보 회고전의 전시명이기도 했던 이 수식어는, 숱한 시행착오 끝에 (1960년대 후반)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고 연필로 수없이 선을 그은 대표작 ‘묘법’의 기법이 도(道) 닦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비우면서 캔버스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착안되지 않았을까 유추해 본다. 개인적으로 연필로 수없이 그은 필력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묘법' 시리즈의 작품을 참 좋아하는데, 다가가기 어렵지 않으면서도 수행하는 정갈한 마음가짐이 작품을 타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박서보 <묘법 No. 18~76~77>, 1977, 캔버스에 연필, 130 x 162 cm (출처: 현대화랑)



항년 92세. 박서보 화백의 개인적인 삶은 잘 모르지만 평소 SNS를 통해서 보이는 모습이나 작품에 담긴 페르소나를 보았을 때,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끊임없이 정진하는 마음으로 그은 선이 모여 올곧은 삶을 이끌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반세기도 안 살아 본 나도 세상의 변화가 빠르다고 느껴질 때가 많은데 9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도태되지 않고 정진하고자 했던 삶의 태도’가 박서보 화백이 말년까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인기를 얻은 비결인 동시에 <묘법> 작품에 매겨진 작품 값보다 더 유의미하고 높은 가치라고 믿는다. 여담일지 모르지만, 아래 이미지는 박서보의 Ecriture No.050508 작품으로 2021년 5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HKD 3,000,000 (약 5억 2천만 원)에 낙찰되었다. 2022년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결산에 따르면 박서보 화백의 낙찰 총액은 3위 (123억 원)이며, 2021년 기준으로 박서보 작품은 지난 10년간 낙찰평균액 증감률 12.6%로 가장 높은 상승세를 보여주었다고 하니,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눈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만끽한 한국 작가 중 한 명이 박서보 화백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Ecriture No.050508 작품으로 2021년 5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HKD 3,000,000 (약 5억 2천만원) 에 낙찰되었다.




 “나는 아날로그 시대에 비교적 70년을 성공적으로 산 작가였습니다.
그런데 21세기는 디지털 시대입니다.
21세기를 살아낼 자신이 없어 불안에 떨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색채 묘법’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습니다.
- 박서보 -




뿌리내리는 삶


"Life is C(Choice) between B(Birth) and D(Death)” by Jean Paul Sartre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죽는 날까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 아마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장 폴 사르트르의 명언일 것이다. 짧게나마 박서보 화백의 기사를 읽으면서 선택의 연속 속에서 형성되었을 ‘올곧은 수행자’를 엿보고 나니, '나'라는 사람은 어떤 선택(Choice)을 하고 또 어떠한 방향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지 자문해 보게 된다.


떠올려보면 어린 시절엔 하늘을 바라보고 위로 향하는 게 성공이고 이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땅에 단단하게 뿌리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끼는 중이다.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것도 멋지지만, 그 근간에 뿌리가 없다면 부유(浮遊)하기만 할 테니 말이다.


정서적으로 부유하는 삶/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형체를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을 감정적 결여 혹은 안정감 없는 자아를 연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뿌리 없는 고목(古木)이 없듯, 땅에 안주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외적으로 보이기에 새로운 자극, 도전, 혹은 성취를 탐닉하며 위로 성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안정감을 고루하다고 느끼거나 그 안정감에서 오는 책임감, 만족감, 혹은 행복감을 불안하고 불편한 감정으로 느끼는 경향도 있어 보인다. 사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위로 성장하는 삶은 결핍된 감정이나 현실적으로 당면한 문제를 직면하는 행위에서 시작되는 보편적인 정서인데도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올바른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 사랑을 줄 수 도 있다’는 말처럼 정서적 안정감 속에서 자라난 사람이 안정감 있는 삶을 지향하고 꾸려나갈 가능성이 더 높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사설이 길었다. 가을 바람결에 딸려온 박서보 화백의 별세 소식에 짧게나마 ‘나는 어떤 마음 가짐으로 나이 먹어 가야 할지, 삶을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된 모양이다. 거창한 목표가 아니어도 잠시 쉬어가는 마음에 꼭 필요했던 질문. 거목(巨木)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내가 어떤 뿌리를 가져야 할지 돌아보는 게 우선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이번 가을, 조금 돌아가도 더 많이 행복하고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한 밑거름을 다진다고 생각해 보련다.


삶의 시작과 끝에 자의(自意)가 없다지만 매 순간 회피하지 않고 올곧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극히 반복적이고 자발적인 행위가 번뜩이는 새로운 도전보다 더 큰 용기이고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한 근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이번 가을엔 내 부족하고 결여된 감정에도 따스한 순풍이 불길 기대해 본다.


아, 미술계에 뜬 부고 소식 하나에도 상념이 많아지는 것을 보니, 정말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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