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시티는 동생들과 함께 ;)
생각해보면 동생들 만큼 가깝게 지내는 사람도 없지만 신기하게도 함께 여행을 해본 적은 없다. 부모님과 함께 가족 여행한적은 있지만 온전히 동생들과여행했던 적은 없었다. 2014년 초에 동생들과 파리를 여행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영국에 있던 나를 방문할 겸 유럽여행을 계획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여행은 시작되었다.
동생들은 그냥 비행기 티켓을 사놓고는 모든 것을 내게 맡겼다. 나도 바쁘잖고 라고 동생들에게 외쳤지만 그녀들은 우리는 잘모르잖아 언니가 예약해야지로 일관했다. 나는유로스타를 예약하고, 민박을 예약하고, 일일투어 에 예약했다. 그리고 동생들이 영국에 오면서 우리의 여행의 시작되었다.
하지만 우리 셋 중 그 누구도 온전히 여행을 철.저.하게 준비하진 않았다. 그렇기에 길을 찾는다고 많이 해매기도 하고, 매일 여행을 마치고 그다음날 갈곳을 검색하기에 바빴다. 우리는 서로에게 매우 솔직한 자매들이라 내 의견을 굳이 숨길 필요도 없었고 서로 의견교환을 활발히 한 뒤 목적지를 정했다.
하지만 몇번의 마찰은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막내동생이 탭을 숙소 도미토리에 아무런 잠금장치가 없는 가방에 그냥 나두고 나온다던지, 가방을 자꾸 등뒤로 부주의하게 매고다녀서 내가 조심하라고 주의를 줘도 듣지않음에서 시작되었다. 나도 피곤한 것이 축적되어서 좀 예민했었다. 그 싸움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일어났다. 주위사람들은 싸우는 우리를 흴끔흴끔 쳐다보고 지나갔지만, 우리는 그걸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둘째의 중재로 싸움은 끝이 났다. 동생과 싸움은 칼로 물베기다. 베르사유 궁전 정원을 보면서 우리는 이미 다풀었다. 앞으로 조심하자. 로 마무리 지었다.
동생들과의 여행은 특별하다. 그 이유를 말하라면 아마 세상에서 제일 나를 잘아는 친숙한 사람들이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비슷한 것 같으면서 아닌듯하면서 비슷하기에 좋아하는 장소 취향이나, 가고싶은 곳도 비슷했다. 우리는 오르쉐미술관이 제일이라고 생각했고, 파리의 노천카페가 세계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거위 간은 우리 입맛에 맞지 않았다.
파리여행을 일일투어를 신청해서 파리를 둘러봤보고었다. 이는 내 게으름이 한몫하기도 했었고 이전에 이 여행사의 투어를 이용해서 만족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투어를 하면 설명도 듣고 내가 굳이 길을 찾을 필요도 없다. 기념품 목록까지 추천해준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내 머리에 기억에 남아있는 설명은 거의 없다. 여러곳을 찾아갔지만, 사진을 보고 기억할 뿐이다. 역시 나의 여행 스타일은 내가 꼼꼼히 찾아서 보고싶은 것 위주로 보는 것, 여유롭게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몇몇 곳이 있다. 단연 에펠탑이다. 처음 지하철을 타면서 보았던 에펠탑은 이것이 파리임을 증명해 주기라도 하는 듯 우리는 이제서야 파리와 와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또한 센느강변 또한 기억에 남는다. 특히 루브르 옆의 센느강변에는 아름다운 건물들과 함께 떠다니는 유람선들, 그 위에서 식사를 즐기는 커플들, 파리는 로맨틱할 수 밖에 없는 도시로 만들어 주는 풍경이다. 시청앞 광장, 회전목마, 어떻게 시청을 저렇게 아름답게 지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오르쉐 미술관의 그림들, 특히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밀레의 만종,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모네의 그림들.
동생들에게 물어봤다. 파리에서 제일 머가 기억에 남어? 역시 동생들의 답변은 길지않다.
다
둘째동생은 이렇게 귀찮음을 표현했다. 다시 정확히 말해달라고 묻자 길거리들이 예뻤다라고 한다.
셋째동생에게 물어보았다.
먹는거, 특히 달팽이 요리
그리고 덧붙인다.
언니랑 싸운거
하지만 자매이기에 이것들도 모두 좋은 추억이다.
사실 몽마르트 언덕은 어떤 곳인지도 모른채 내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가이드북은 이렇게 말한다.
몽마르트 여행기에서는 팔지채워주는 흑형을 조심하라, 싫다고 해도 억지로 채우니 팔목을 꼭 붙들고 가라, 아니면 쥐도새도 모르게 팔지를 채워서 엄첨난 돈을 뜯어낼 것이다.
몽마르트에 도착해서 성당에 오르는 계단을 보면서 동생들과 나는 높은 경사길에서 글로 보았던 흑형들을 볼 수 있었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우리는 성당을 향해 걸어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블로그나 여행카페에서 보았던 그런 일은 없었다. 우리에게 접근해왔으나 필요없다고 하자 순순히 물러났다. 올라가는 곳곳에서 에펠탑 열쇠고리, 아무도 사지 않을 것 같은 조악한 질의 이미테이션 상품을 파는 소위 '흑형'이 있었다. 주로 보자기 하나를 깔아놓고 팔고 있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럽스럽게 느껴졌다. 성당가는 언덕의 중간정도 올라갔을 때, 다급하게 다가온 한 흑인 아저씨가 머라고 머라고 말을 하더니 그 주위에 있던 보부상들이 갑자기 밑에 있던 보자기의 양 끝을 묶으면서 팔던 물건들을 챙겼다. 어찌나 빠르던지.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놀라서 쳐다봤다.. 그렇게 팔던 10여명의 보따리 장사꾼들은 어디론가 급히 달려갔다. 조금있다가 보니 군인 혹은 경찰로 추정되는 무리가 나타났다. 30여명으로 추정되는 부대는 훈련을 하는 것인지 줄을 맞추어서 몽마르트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이 무리가 보따리상들을 단속하기 위한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올라올때 보따리상들과 팔지상인들은 이미 없어지고 난 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들 '덕분에' 성가신 장사꾼들이 없이 관광을 해서 고마워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프랑스의 맨살을 본 듯 했다.
백인경찰, 흑인 보따리상과 팔지 장사꾼들
이 뚜렷한 인종의 경계에 서있는 것은 서글픈 일이었다.
이 뚜렷한 인종의 경계에 서있는 것은 서글픈 일이었다.
몽마르트 성당은 로마네스크-비잔티 의 양식이라고 하는 특이한 모양의 성당이다. 내 눈에는 인도의 타지마할과도 닮게 보였다. 파리의 전경을 내려다 볼수도 있었는데, 파리의 떠날 때 보기에 참으로 적합한 광경이었다.
그 앞에서는 엄첨난 하프 연주자와 만날 수 있었는데 나름 피아노를 전공했다는 내 동생과 한 대화는 이랬다.
"저 하프가 얼마냐면 말이야..."
"저게 대학도 그냥 프리패스 한다는 그 하프야?"
성당바로 앞에는 몇십년을 그 곳에서 연주했을 지 모르는 할아버지가 멋진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바이올린의 선율은 아름다웠다. 더 보고 싶었지만 너무 추워서 우리는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오다보니 아까 단체로 사라졌던 보부상들이 다시 보자기를 펼치고 있었다. 기념품용으로 열쇠고리를 사려고 보니 4개에 1유로라고 한다. 장담컨데 이곳의 기념품이 내가 갔던 파리의 어느 기념품점보다 저렴했다. 여기서 동생과 나는 주위에 돌릴 기념품을 샀다. 동생은 많이사고도 나중에 더 사지않았음을 후회했다.
우리는 유로스타를 타기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유는 잘 생각 나지 않지만 나와 막내동생은 기차를 기다리며 한번더 다투었다. 영국의 딱딱한 이민국 직원을 만나니 벌써 프랑스가 그리워졌다. 그때는 동생말고 연인과 오리라 결심하면서.
파리, 로맨틱한 도시 파리 꼭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