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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자 J와 P

그와의 여행 [필리핀 팔라완 1]

by special J

2020년 난데없는 팬데믹으로 하늘 길이 막혔다.


2019년 말에 출장으로 아프리카를 다녀오며 더 많은 출장과 여행을 기약했는데,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팬데믹 기간인 만 3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첫째, 학업을 마쳤다.

둘째, 결혼을 했다.

(이러고 보니 정말 큰일들을 했다 싶다.)


학업을 마친 해방감과 함께 졸업이 확정되자 마자 짐을 꾸렸다.

행선지는 분명했다.


필리핀의 팔라완, 내가 제2의 고향으로 느끼는 그 곳이다.


팔라완에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살았고, 2017년에 가족들과, 2019년에는 연구로 방문했었다. 2023년에는 새로운 가족과 방문하는 것이다.


팔라완에 계속 가는 이유는 풍경은 조금씩 바뀌지만 대부분의 것은 그대로이다. 학교에서 일하던 선생님들, 그리고 영어를 가르쳐 주던 튜터 선생님, 한인 목사님 가족과 내가 즐겨가던 식당, 내가 살던 집.


팔라완은 천혜의 자연을 가지고 있지만 가는 길이 쉽진 않다. 한국에서는 출발하면 한번의 환승이 필수다. 마닐라 공항에서 국민음식인 졸리비를 먹었다. 평범해 보이는 하지만 필리핀 아이들에게 인기많은 졸리비 캐릭터가 우리를 반겨준다. 나는 늘 먹던 비프타파를 남편은 햄버거를 먹었다.


짧은 일정에 우겨넣는 여행을 하다보니 우리 일정은 빡세다. 사실 극기훈련 수준이다. 그리고 나는 남편에게 엘니도를 보여주고 싶어 5시간 벤을 타야하는 일정을 감행하기도 했다. 여기다 더해 남편은 소위 대문자 J이므로 모든 일정을 빠뜻하게 진행하고자 했다. 나는 대문자 P로 모든 것이 융통성이 있는 일정이다.


이 여행에서 우리 둘의 차이를 잘 보여는 것이 영어 튜터 선생님 집 방문이다. 나는 필리핀에서 꾸준히 영어 튜터를 받았다. 자주는 못하더라도 조금씩 진행하며, 만 1년간 튜터링을 받았다. 선생님은 우리엄마 나이 대인데 교사로 근무를 하시다가 이제는 은퇴를 하고 손자, 소녀를 돌보며 은퇴생활을 하고 계신다. 튜터링을 하지 않을 때에도 여러 일을 핑계로 튜터 선생님에 자주 놀러 갔다. 딸, 아들이 내 나이대라서도 있었고, 집안 문화가 내가 자란 가정과 비슷해서 익숙한 편안함이 있었다. 선생님은 독실한 기독교였고, 우리 엄마가 내게 그러는 것처럼 자녀들과 그리고 나에게 항상 잔소리(?)를 하셨다.


잔소리 종류는 (내가 독신일 때) - 기독교 남자와 만나 결혼해야한다. 밤에 돌아다니지 말아라. 믿음을 항상 가져야 한다. 등 우리엄마의 것과 유사했다(?).


튜터샘 집에 나는 서프라이즈 방문을 계획하고 있었다. 사실 서프라이즈라기 보다 졸업준비로 여행에 세세히 신경쓰지 못했다. 선생님은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걸 알고 있었고, 그 집은 늘상 가던 집이라 지리를 헷갈릴 일은 없었다. 하지만 몇 년만에 방문한 길은 많은 것이 바뀌어있었다. 못보던 고층(2-3층) 건물이 있었고, 새로 지어진 주택도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튜터 샘 집에 가니 생각과 다른 집이 보였다.


마당에 사람이 보여 물어보았다.


"여기 셜리나스 샘 집이 아닌가요?"


그 사람은 셜리나스라는 사람은 모른다고 답했다.


"엥?" 대부분은 주민이 서로 알고 지내는 동네인데, 모른다고 하니 의아하다. 지금 생각하니 타지에서 온 낸니가 아니었나 싶다. 아니면 내 발음을 잘 못알아 들었든지.


남편의 얼굴을 살펴보니 굳은 표정이 역력하다.


이 표정은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남편의 표정이다(사실 나에게 이런 표정을 자주 짓는다). 이 주변엔 셜리나스 샘이 열심히 다니는 교회가 있다. 교회에가면 사람이 있고,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50미터 정도 가서 교회에 가니 초등학생들이 농구를 하고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셜리나스 샘 집을 아냐고 물어봤다. 그 중 꽤 똘똘해보이는 아이가 안다고 한다.


아이가 집까지 우리를 데려다 주고 정중하게 셜리나스 샘을 불러주어 나는 무사히 셜리나스 샘을 만날 수 있었다. 셜리나스 샘과 밀린 이야기들을 했는데, 남편과 사별하신 이야기, 자녀가 해외로 이주한 이야기, 손녀, 손자를 돌보아 주는 이야기 등의 이야기를 했다. 남편은 튜터샘을 만난 것을 여행에서 베스트 중 하나로 꼽기도 하였다.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왜 미리 연락을 하지 않았는지, 길을 미리 살피지 않았는지에 의문이라고 한다.

물론 나의 생각은 다르다. 어쨌든 잘만났고, 내가 재치있게 교회에 가서 지인을 찾았으니 모든 것은 오케이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여행은 서로의 다름을 (더) 알아가는 시간이다.


KakaoTalk_20250201_172216249.jpg 그래도 무사히 만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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