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유산, 10주간의 이야기
자기야, 나 두 줄이야.
"..."
회사에 있던 남편은 내 전화를 받고 몇 초간 말이 없었다. 이어서 메신저로 보낸 사진을 보고는 진짜야?를 연거푸 반복했다. 유건이를 낳고 4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둘 다 긴가민가, 감개무량 그 자체였다. 평소에도 상상력이 풍부한 나였기에 처음엔 매직아이인가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붉은색 줄은 더 선명해졌다. 남편과의 통화를 끊고 평소처럼 출근과 아이 등원준비를 한 뒤 집을 나섰다.
우리에게 보내주신 행운이자,
이 아이에게 보여주신 세상이 행운이길.
태명은 럭키였다.
첫째 유건이의 태명이 초록이었는데, 처음엔 남편이 초록이처럼 색으로 짓고 싶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막상 딱 떠오르는 게 없어 몇 주간은 뱃속 아기라고만 말했다. 그러다 문득 'LUCKY'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남편에게 공유하자 바로 좋다고 하며 그렇게 럭키라는 태명이 지어졌다. 왜 럭키였을까. 메모장을 꺼내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렇게 적혀있었다. '우리에게 보내주신 행운'이자, '이 아이에게 이 세상이 행운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초음파 앨범을 열고, 초음파 사진을 하나씩 꽂다 보니 조금씩 실감이 났다. 아, 내 뱃속에 또 작은 생명체가 자라고 있구나. 가방엔 다시 분홍색 열쇠고리를 달았고, 매일 서서 출퇴근하던 지하철을 타면 자연스럽게 분홍색 의자로 향했다. 잠이 쏟아지듯 피곤하고 콕콕 찌르는 듯한 복통도 찾아왔다. 4년 전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듯했다. 평소 육아를 많이 하는 남편은 이렇게 더 약해진 나까지 챙기랴 매일 다크써클이 턱 끝까지 내려왔다.
아기가 주수에 비해 너무 작고 잘 크질 않네요.
9주쯤 됐을까. 청천벽력 같은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들려왔다. 사실 처음 아기집을 봤을 때도 평균 주수보다 조금 느려서 착상이 조금 늦게 됐구나 싶었다. 진행 속도가 늦어지니 아기는 당연히 작을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매주 걱정하는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그러다 의사선생님의 그 말씀에 심장을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기가 잘 크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었기에.. 선생님은 그래도 아직 장담을 할 수는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말씀하셨다.
병원에서 돌아온 그날, 집에 앉아있던 나는 결국 눈물이 터졌다. 한참을 울다가 귀가하고 있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남편 목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더 쏟아졌다.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소리 내면서 엉엉 울었다. 모든 게 내 탓 같았다. 내가 조금 더 조심할걸, 그날 그렇게 무리하지 말걸, 그냥 휴가 내고 쉴걸, 온갖 생각이 들었다.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
결국 나는 10주차에 계류유산 판정받고, 소파술을 진행했다. 혹시 모르는 상황에 미리 금식을 하고 갔던 터라 의사선생님의 진단과 동시에 수술로 바로 이어질 수 있었다. 수술실에 들어간 사이 남편은 나를 기다리며 그간 소식을 알고 있던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상황을 전했다.
마취가 깨고 수액을 다 맞을 때까지 세 시간 정도 걸렸을까. 정신을 차리고 나니 톡에는 걱정과 염려로 가득한 메시지들이 줄지어 있었다. 힘없이 돌아온 집 앞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커다란 통이 놓여있었고, 여전히 온기가 가득한 미역국이 그 안을 채우고 있었다. 그때부터 2차 눈물샘이 또 터졌다. 미역국을 먹으며, 메시지에 답하며, 너무 보고 싶었던 누군가와 통화하며. 한없이 허했던 내 속은 조건 없이 부어지는 그들의 사랑으로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아이를 잃은 것은 여전히 아프고 슬픈 일이다. 하지만 마음껏 아프고 나니 알게 됐다.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고 응원하는 이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사랑을 두 손에 담고 하루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