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효율적인 인간이 되고 싶어
나는 요즘 내가 가성비 인간이 되었다는 걸 자주 느낀다. 무언가를 선택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준이 ‘좋은가’가 아니라 ‘효율적인가’ 일 때다. 물론 효율을 따지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내 가치관에 이게 나쁘다고는 생각이 안 든다. 그저 그냥 아쉬울 뿐이다. 항상 나는 질보다는 양을 따져보고, 마음에 드는지보다 손해는 아닌지를 먼저 계산한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이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남는지, 얼마나 빨리 결과로 돌아오는지를 따져본 뒤에야 움직인다. 그렇게 살다 보니 선택은 늘 무난해지고,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순간은 점점 줄어든다.
이런 태도는 나를 지켜주기도 했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였고, 쉽게 상처받지 않도록 스스로를 관리하는 법도 배웠다. 옳은 삶의 방향성으로 나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점점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어갔다. 모든 것을 따져 고르느라, 감정이 먼저 닳아버린 느낌이 든다. 어떤 선택 앞에서 무엇이 가장 효율적이고, 괜찮은지 생각하는 자세는 뭔가 나를 부족한 인간이 된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가성비는 삶을 안정시켜 주지만, 삶을 넓혀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요즘 나는 설레는 선택 앞에서조차 망설이는 나를 발견한다.
회사에서는 그 감정이 더 선명해진다. 열정페이로 일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가 있다. 급여가 엄청 많지는 않아도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은 한다. 물론, 만족하지는 않는다. 대표는 나를 ‘가성비 좋게’ 쓰고 있고, 나는 그 사실을 너무 정확히 알고 있다. 월급은 오르고 성과도 인정받지만, 그 모든 것을 합쳐도 서울의 20평대 아파트 하나를 온전히 가질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허탈해진다. 노력은 분명 쌓이고 있는데, 삶의 기준선은 좀처럼 따라오지 않는다. 그 간극을 깨닫는 순간, 열정은 자연스럽게 계산으로 바뀐다. 더 잘하기보다, 덜 손해 보는 방향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이 감정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무작정 다시 열정을 불태우는 것도, 모든 걸 내려놓고 체념하는 것도 답은 아닌 것 같다. 아마 지금의 나는 ‘가성비 인간’이 되었다기보다, 현실을 너무 명확하게 알아버린 상태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는 모든 선택에 효율을 묻기보다, 적어도 한두 가지쯤은 나를 위해 비효율적으로 남겨두고 싶다. 돈이 되지 않아도, 당장 결과가 없어도, 나를 조금 덜 메마르게 만드는 선택들.
가성비로만 살아가는 삶은 오래 버틸 수는 있지만, 오래 설레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계산하면서도 가끔은 마음 편을 들어주기로 한다. 현실을 아는 어른으로 살되, 완전히 식어버리지는 않기 위해서. 그 정도의 비효율은,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