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쟁이가 글을 쓰게 하기 위해 온 문장이 필요하다.

어쩌다 혜화역 카페에서 한 글쟁이가.

by 지수

바쁘게 삶을 영위하는 일개 직장인들은 사실 딱히 하고 싶은 말이 없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집에 가고 싶다.’, ‘빨리 퇴근하고 싶다.’ 정도의 간절한 바람일 뿐. 매일 같은 하루를 맞이하는 직장인이며, 글을 쓰다 죽고 싶은 작가를 꿈꾸는 나는 매일매일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저 생각을 기록하면 될까, 아니면 신기한 경험을 할 때마다 기다려야 할까. 책을 읽고 떠오르는 문장들은 적기는 하지만, 그것이 과연 내 글이 맞을까. 사실 며칠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쓰고 싶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그려나가야 할지 도무지 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수필가를 꿈꾸는데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어떤 내용으로 글을 써야 할지, 참 할 말이 없어 눈앞이 깜깜했다.


그냥 지금은 내 생각을 기록하기에 집중하기로 한다. 사실, 지금 좋아하는 공연을 보러 혜화역에 있다. ‘보니 앤 클라우드’라는 뮤지컬인데, 사실 영화 이름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테일러스위프트노래에서 보니와 클라우드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다. 무튼. 공연을 보기 전 책을 읽으려고 했다. 그러나 원래 가기로 했던 조용한 북카페가 사람이 많아 다시 문을 닫고 나왔다. 그 카페는 10평 남짓했지만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대한민국에 독서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그리고 추위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 바로 옆 카페로 들어왔다. 나름 잔잔한 팝송이 틀어져있는, 영화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요즘말로 느좋 카페다. 약 20권 정도의 책들이 꽂혀있지만 나는 그것들에 대해 관심은 없다. 오늘 ‘레미제라블 2‘와 ‘오로라를 따라간 푸트만스 씨‘라는 책을 모조리 읽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공연 시작시간까지 약 3시간 30분이라는 넉넉한 시간이 있기에 집중해서 보면 적어도 1권 정도는 끝낼 수도 있을 것이다. 커피를 주문해 놓고 책을 꺼내놓고 기다리는데 내 테이블에 적혀있는 수많은 쪽지들이 내 눈앞을 스친다. 어떤 이는 화장실이 급해 온 상남자인데, 자기가 온 카페 중에 세 손가락에 꼽는다는 유쾌한 글도 있고, 버킷리스트를 적어놓은 글, 대학교 4학년을 곧 졸업하고 어떤 것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들. 그리고 내 눈에 딱 들어오는 글은 바로 ‘읽어보세요 나의 짝 찾는 중‘이라는 글이다. 이번 한 주를 안온하게 보냈냐고 물음 끝에는 한 사람의 다정이 메모지안에 녹여있다. 그 사람이 와보고 싶었던 바로 이 카페에서 느지막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느끼니 좋다는 글에서 나는 누군가의 소중한 장소를 우연히 찾아왔다는 생각이 끝에 맺혔다. 요즘 나도 깊게 생각하는 중이다. 나의 짝을 찾는 것 말이다.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고, 반려와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사는 삶. 사실 그것이야말로 제일 어려운 것 같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 말이다. 어제 엄마가 빨리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서 그런지, 그 사람의 짝을 찾는다는 글이 내 두 눈에서 지워지지가 않았다. 그 메모지를 다시 원래 자리로 꽂고 나서 그래서 급하게 나도 카페에 있는 메모지와 볼펜을 챙겨 글을 쓰기로 한다. 요즘 그다지 크게 생각하는 주제가 없어 메모지에 끄적거리다가 지우기를 반복하지만, 그냥 요즘 나 자신에게 되뇌는 말을 쓰기로 한다.


“여유를 갖고 사는 삶을 그려내길. 긴 인생을 살지 않았지만 아직 조급할 필요가 없다. 평성심을 유지하는 내가 되길.“


내가 쓴 메모메 내 이름을 남기고 그 수많은 문장들 사이로 나를 숨겨둔다. 그것을 보니 글을 쓰고 싶어져 급하게 키보드를 꺼내 두드린다. 매일 태블릿과 키보드를 등 뒤에 짊어지면서 다니길 잘했다는 생각도 해본다. 언제 글을 쓰고 싶어 질지 모르는 순간들은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매일 무거운 짐을 짊어진다. 그 짐은 고통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행복이다. 누군가 네게 인생을 영위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들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책 읽고, 글 쓰고, 마음이 평안한 게 가장 중요하다고 답하고 싶어진다. 가장 중요한 것 하나라고 묻지 않았으니 세 가지로 답하기로 한다. 어쩌다 타인의 문장들이 나를 계속 생각하게 하는지 모를 일이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그냥 마음이 몽글해진다. 내가 요즘 쓰고 싶은 글이 진짜 없었는데, 이렇게 내 생각을 계속 적는 것도 나름 꽤나 가슴 뛰는 일이라고 또 생각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어느 나라의 속담이 있다. 한 글쟁이가 글을 쓰게 하기 위해 온 문장이 필요했나. 우연히 들어온 카페에서 이렇게 계속 키보드를 두드리다니. 잔잔한 음악 속에서 내 키보드 소리가 또각거린다. 반주에 맞춰 내 글도 한 단어, 두 단어가 쌓여간다.


오랜만에 글을 썼다.

이름 모를 누군가 덕분에. 그리고 매일 오늘은 글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태블릿과 키보드를 들고 다녔던 내 덕분에. 또 이렇게 순간순간 글을 쓰고 싶고, 글이 써지는 나날들이 계속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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