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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Mar 07. 2021

백수 아버지의 영자신문



[앉아서 본 하늘은 너무 멀다. 나의 기도가 하늘에 닿을까]  

      

-엄마, 아버지는 왜 일을 안 해?    

미군부대에서 웨이트리스 일을 했던 엄마가 오랜만에 집에 왔다. 백수였던 아버지는 엄마가 벗어 놓은 옷의 냄새를 맡는 것으로 엄마를 맞이했다. 땀이 밸만큼 힘들었을까 맡아보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만한 나이다.

그래도 다투지 않고 시작하는 풍경에 안도할 때, 아버지는 나보고 나가 있으라고 했다. 그 또한 오랜만에 엄마가 아닌 여자를 보고 달아오른 아버지의 욕망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당도 없는 그 가난한 두 칸짜리 방에서 내가 나가 있을 곳은 동네, 그 동네를 배회하는 것이었다. 반 지하 계단을 다섯 개를 올라오면 웃음소리 가득한 주인집의 가지런한 신발이 보였다. 

하나, 둘,  셋, 넷.

신발이 다 있는 것으로 보아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듯했다. 밖으로 나가고 있다고 신호를 주듯 소리가 요란한 철제 대문을 열고 긴 골목 끝까지 걸어 보았다. 나는 한 쪽 목발에 의지한 채 담장이 높은 이웃집 벽을 다른 한쪽의 목발로 그어보았다. 회색 돌 담장에 가끔씩 끼어 있는 민들레 잎이 고무로 된 목발 바닥에 걸려 툭툭 떨어졌다.    

‘아이야, 그만해라. 생명력 강해 버텨 낸 노란 민들레 잎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    

골목 끝까지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면 아버지와 엄마의 사랑이 끝나있을까.

한 번, 두 번, 세 번...

조용한 골목에 낯익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군청색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가장 높은 담장이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버클이 잘 잠가지는 국방색 가방을 맨 빡빡머리 오빠는 드문드문 칠이 벗겨진 초록색 철제 대문으로 들어갔다. 목발을 짚고 골목을 배회하는 나를 위해 웃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집이 있는데 들어갈 수 없는 나는 골목에 주저앉아 생명력 강한 민들레 꽃 잎을 하나, 둘 주워 보았다. 씩씩한 척 흥얼대던 노래의 반복이 끝나 갈 즈음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    

‘아빠에게 일을 주세요.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 돼요...’    

-지인이 아니냐?    

‘드디어 나에게 아는 척을 하는 사람이...아...아버지 친구. 영택이 아저씨네.

순간,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보다 더 급하게 튀어 나온 말이

-아저씨, 지금 들어가시면 안 돼요!

-아버지 없냐?

-아뇨, 엄마 있어요.

영택이 아저씨는 6학년 소녀의 깊은 뜻을 알 리가 없었다. 필사적으로 아저씨의 바지를 잡아 당겼다. 아저씨는 알 리가 없다.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는 말한다. -같이 가자.

아마도 목발에 의지하고 걷고 있는 나를 도와줬다고 생각하겠지.    

-창헌아

아버지는 영택이 아저씨의 부름에 대답이 없었다.

‘오줌이 마려워 죽을 것 같은 기분은 뭘까?’

-아버지! 영택이 아저씨 왔어요!

아무 것도 모르는 영택이 아저씨가 안방 문을 열어젖혔다. 오줌보가 터질 것 같았다.

그때 아버지는 가장 편한 자세로 [영자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때, 나는 쩍쩍 갈라진 마루 틈새로 참았던 오줌을 싸버렸다.        

그랬다.

박 정희 정권 엘리트였던 아버지는 불합리하다는 이유로 회사를 다니지 않았고 영어를 배워야한다는 합리적인 이유를 대며 그렇게 [영자 신문]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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