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7.

거짓도 사랑할 수 있는가.

by Sabina

[일러두기:본 소설은 실화에 근거를 둔 허구입니다. 창작 소유권은 황정미에게 있습니다]


내 차가 벤츠 e클래스 익스클루시브라는 것은 두 가지쯤 의미한다.

돈 많은 부모가 사주었거나 내가 돈이 많거나 인데, 그 무렵 그러니까 맨드라미를 좋아하고 도서관에서 승진 시험을 준비하던 그 무렵, 이미 나는 두 번의 이혼으로 위자료가 있기에 가능했다. 게다가 행정직 공무원으로 마흔이라는 나이와, 여자라는 성별은 승진하는 것에 전혀 제약이 되지 않으니 내 할 몫이다. 돈을 벌고, 돈을 쓰는 것이 말이다.

법령과 업무 처리 규정에 따라 소관 업무를 계획하고 보고서와 문서를 기안하고 보고하는 일이 내 주된 업무다. 성격이 드러운 동기만 없다면 갑질의 경험은 드물다. 일이 꼬이지만 않는다면 제 시간에 퇴근할 수 있고 종이 파일 속에서 숨 막히게 숫자를 맞추고 하늘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했던 보상은 주말마다 풀 수 있다. 단순한 일 같지만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기민한 역할을 맡고 있다. 퇴근을 일찍하고 주말마다 여행을 갈 수는 있지만 퇴근 이후 혼자 영화를 보거나 벤츠를 몰고 혼자 여행을 갈 정도로 면이 두껍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먼지를 뒤집어 쓰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 했던 벤츠는 이제 강변 도로를 달리고 있다. 내 차는 이제 그가 운전하고 있다.

벤츠 조수석에서 겨울 나그네를 듣던 그날, 눈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뜨거웠던 그날, 그는 말했다.

-벤츠 e클래스는 잔 고장이 적고 내구성이 좋아서 독일에서는 택시로 씁니다.

-그래요?

-4기통 디젤 엔진을 사용해서 다른 기종보다 마력이 셉니다.

벤츠 e클래스를 운전한다는 것은 몇가지쯤 의미가 있어야 할까?

-이 차는 옵션이 있습니다. 추돌 위험이 있을 경우 스티어링 휠 조작을 도와주는 충돌 회피 조향 어시스트 기능을 숙지하면...

-직접 몰아 보실래요?

그는 이제 조수석에 앉지 않는다. 내 차는 이제 그가 운전하고 있다.


-신안군 가보셨어요? 플로피아 섬이라고, 바다 위에 꽃 정원을 조성한 곳인데?

-모릅니다.

-맨드라미 섬이라고, 이번 주에 같이 가볼래요?


카카오톡으로 여행을 제안하면서 파도와 억겁의 시간이 빚어 낸 아름다운 꽃이 만개한 병풍도 사진을 보내주었다. 특히 코발트 블루, 샛 노랑, 보라색으로 피어 난 병풍도는 맨드라미를 닮은 곳으로 퍼플 섬이라고 부른다고 말 줄임표나, 간곡한 어조의 느낌 없이 그가 쓰고 있는 담백한 어조로 정보를 나열했다.

-태오가 신경쓰여서...

-네?

숨어 있어서 잘 나오지 않는 고양이, 태오가 왜 이 부분에서 거론 되어야 하는지, 호흡만 같이 하는 동거인이라고 표현했던 밥만 주면, 아니 태양의 기운만 펼쳐주면 되는 그의 고양이 태오가 왜, 지금 언급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불성실한 납세자때문에 골치가 아프네요, 체납관리 서류를 오래 봤더니 시야를 바꾸고 싶은데.

-그럼 어머니에게 태오를 맡겨보겠습니다.


병풍도는 맨드라미 꽃과 닮은 색으로, 섬 전체가 주홍색이 넘쳐났다. 보라색으로 승부수를 띄워 이목을 집중시킨 퍼플섬은 이국적인 자태로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낡고 오래된 지붕까지 맨드라미 색 지붕으로 바뀌어 있는 병풍도, 그렇게 활기가 넘치고 독특한 풍경을 자아내는 그 병풍도에서 그는 불안했고 말이 없었다.

하필이면 린넨 이동 가방에 들려 온 태오가 벤츠 뒷 좌석, 그것도 병풍도를 따라오지 못한 선착장에 있었다.

-가죠

-벌써요?

도서관 지붕에서 철기둥이 꽈리를 틀고 내려온 자리에서 빛을 발하던 맨드라미가 병풍도에서는 눈길 머무는 곳, 발길 닿는 곳마다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빨갛고 날카로운 닭 벼슬이 지천에서 유혹하고 있는데 그는 가자고 한다.

어쩌면 당신을 닮아 그 무렵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맨드라미이고 어쩌면 당신을 닮은 태오가 내 차에 타고 있기 때문에 나는 맨드라미를 포기하고 태오에게로 갔는지도 모른다.

눈길이 머물고 발길이 닿는 곳마다 비경이고 절경인데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는 벤츠 레이노 썬팅은 밀회를 즐기는 연인에게는 제격으로 닫힌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 공간에서 또 다시 겨울 나그네를 들었고, 그는 다시 미처 전달하지 못한 과거를 쏟아냈다. 내가 다시 손을 포개면 이제 그는 기다리지 않았다. 느리고 단호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그의 행동이 바뀌는 지점이다.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태오가 내는 소리인지, 그가 내는 소리인지 구분이 가질 않는다.

욕구로 가득찬 차 안은 발정이 나서 그글대는 고양이 소리가 난다.

그때,

그의 몸 위로 격하게 올라타는 그 순간, 뒷 좌석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태오와 눈이 마주쳤다.

KakaoTalk_20210527_004608553.jpg

[네이버 카페, 힐링스페이스에서 연재했던 소설입니다. 퇴고 중입니다.]

이전 06화소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