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본 소설은 실화에 근거를 둔 허구입니다. 창작 소유권은 황정미에게 있습니다]
알러지에 예민한 편이다. 그래서 더 자주 빨아야 더 하얀 린넨이어야 했다.
모달이나 차렵 이불은 지양하는데 그의 이불이 하필이면 5성급 호텔 침구로 유명한 크라운 구스였다. 밤새 들은 이야기는 부모의 지원이 없다는 부모를 향한 힐난 뿐이었는데 그는 고급 이불을 쓰고 있었다.
물론 구스 이불 때문은 아니다.
태양이 쏟아지는 아침, 내 침구가 하얀 린넨인데, 침구에 유독 예민한 여자가 깨어보니 눕기만 해도 눈이 스르르 감기는 구스 이불 때문에 남자 혼자 사는 집에서 아침을 맞이했다고 변명하는 꼴은 우습지 않은가.
큰 창문으로 쏟아지는 태양 빛에 눈을 찡그리고 어젯 밤 일을 생각했다.
'카카오톡 메시지에 반응을 했지...와인을 따르다가 기다리던 메시지가 아니라, 받고 싶지 않은 메시지라고 말하면서 화가 난다고 했지...'
와인에 취한 건지. 나는 용감했다.
-잠시 치워 두세요, 신경이 쓰인다면요...
-그럴 수 없습니다.
'뭐가 그럴 수 없다는 거지'
-어머니 연락만은 피할 수 없습니다.어머니는 제게 산소 호흡기 같은 분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맞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오히려 사건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리고 맞아서 멍이 든 엄마의 살 갗,그 하얀 피부에서 푸른 멍이 붉은 멍으로 변해가는 원인을 알고 싶다고 했다. 그는 우주계, 동물계, 심지어 판타지로 가득한 세계에서 자신이 만들어 놓은 가상의 세계 안으로 엄마를 데리고 들어가야 했다고.
그때마다 그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왜 맞고 사세요?
-왜 일만 하세요?
-왜, 왜...
-어머니는 답변을 했나요?
내가 물었고 그는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말하지 않았다. 순간, 말을 끊어서 미안하다고 말할 뻔 했다.
뭐가 이렇게 그 남자의 패턴으로 말려 들어가는지, 와인에 취해서 그렇다고 변명하고 싶을 뿐이다.
카카오톡 메시지가 한 번 더 왔고, 그는 골몰하듯 두손으로 머리를 싸매고 한숨을 쉬었다.
-잠시 나갔다 올게요...
큰 베란다 창을 열고 다시 큰 창문을 열고 심호흡하는 그가 보였다. 그는 바람소리를 주의 깊게 듣고,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하나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계속해서 깊은 호흡을 잘게 쪼갰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부모 이야기가 아닌가, 그는 무엇 때문에 카카오톡 메시지에 집착하고 무엇 때문에 긴 호흡이 필요할까.
-저는 새로운 정보를 결합해서 창조적인 것을 만들어 냅니다. 바람 소리와 물 소리를 결합해서 생각하면 음악이 됩니다. 내가 만든 이론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는 거, 그게 제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어머니만이 유일하게 제 세계를 이해했습니다.
그럼, 나도 당신의 세계를 인정하고 동조하는 어머니 같은 사람이면 되나요..? 묻고 싶었다.
베란다 창문을 닫고 차가운 바람의 기운을 고스란히 안고 들어 온 그 남자의 손가락이 하얗고 차가워 보였다.
와인에 취한 뜨거운 나의 손이 그의 손에 포개지면 되는 순간이다. 내가 운전할 때마다 나의 오른 손이 그의 허벅지 위에 포개졌던 그날 처럼 그를 안아줄 용기가 없는 나는 그의 차가운 손 위에 따뜻한 나의 마음을 포갰다.
-가족과 함께 있으면 숨이 막혔습니다. 나만의 공간으로 숨어 들어가야 했습니다. 무서운 아버지도 착한 엄마도 다 나의 그늘이었습니다. 그때 마다 나는 구석진 공간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가끔은 내 발 밑으로 기어가는 집 벌레가 친구가 되어주기도...
그 순간 용기를 낸 것은 와인 때문이 아니다.
건조하고 텁텁한 그의 목소리에 따뜻한 나의 입술을 주는 것은 어쩌면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그가 말한 산소 호흡기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당신이 나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나도 당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나의 세계에서 왕이 되는 꿈을 꾸고 살아가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인연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거짓도 사랑할 수 있을까.
그가 만든 세상으로 나는 들어갔다. 그가 던지는 질문에 두 팔을 벌려 안아주는 것, 그게 나의 답이었고 그도 나에게 안겼다.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그에게 밥을 주고 그를 보호하는 그 만의 자원이 될 수있을까.
그 때 발 밑으로 툭, 와인과 커피 잔이 어지러진 그 공간에 낯선 느낌의 생명체가 발 밑으로 툭 지나갔다.
-어머...!
그가 웃는 것을 처음 보았다. 놀란 내가 움츠러들 때 미소를 지으며 아이 처럼 그가 말했다.
-아, 제가 기르는 고양이 입니다. 숨어 있어서 나오지 않는 놈인데, 어디 숨었다가 이제 나왔나 보네요.
숨어있어서 존재를 모르던 그 고양이 이름이 태오. 자기를 닮아서 편한 그 고양이는 그냥 호흡만 같이하는 동거일 뿐이라고.
나는 표정이 없던 그가 보여주는 미소에 이미 일장이 부족해서 시들어 버린 맨드라미처럼, 어쩌면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겨울 나그네처럼 아주 편하게 몸을 기대고 안겼다. 아기 처럼.
무엇때문에 나는 그의 여자가 되었을까.
[네이버카페 힐링스페이스에서 연재했던 소설 입니다. 퇴고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