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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Aug 13. 2021

후쿠오카 골목에 남겨진 휠체어 자국.

골목을 기억하다


복효근 시인은,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Wild Beast)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담그는 것을 보고 이렇게 썼다.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우떼는 강을 다 건넌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복효근



여름이 되면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에는 가뭄이 찾아온다. 이때 초원에서 풀을 먹으며 사는 누우는 먹이를 찾아 대이동을 시작한다. '살기 위해서' 이동을 하고 '살기 위해서' 몇 마리 누우는 악어의 밥이 되었다.



명품 지갑 속에 오만 원 권 지폐가 가득 들어있고, 통장 잔고를 보지 않아도 디지털 통장이 배가 불러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시기에 사기를 당했고, 시기를 타고 부의 흐름이 끊겼다. 그때의 나는 피로 물들인 강물에서 악어의 밥이 되어버린 심정으로 앓아누웠고, 학생 수가 줄어가고 수입이 반 토막이 나버린 그 상황을 애써 모면했다. '스스로' 희생양이 되어 죽음을 선택한 행동이라면 사유하는 인간 이상으로 숭고한 그 무엇이 있기라도 했을 텐데... 아픈 노모에게 들킬까 수업이 끝난 새벽이면 아파트 뒷골목 벤치에 앉아 피를 토하듯 울었고, 남아있는 살도 찢어 포식하도록 악어에게 넘겨주고 싶었다.



가끔은 나이 어린 자가 더 지혜롭고, 가끔은 나이 어린 자가 던 단단할지도 모른다. 제자들은 시름시름 앓고 있는 선생님에게 일본 여행을 제안했다. 어린 제자들은 악어의 밥이 되고 있는 선생을 다시 '살기 위한' 방법으로 장애인이 가기 힘들다는 해외여행을 제안했고, 우리는 그렇게 '대이동'을 했다.










유사가족이라고 한다. 대리 가족이라고도 한다. 24시간 숙식을 하며 같이 살았던 고 3제자들이 수능을 끝냈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고 악어의 밥이 되어버린 선생님 따위는 잊어도 되는데, 제자들은 휠체어 그리고 나의 캐리어 그리고 나의 몸뚱이를 책임지는 '대이동'을 감행했다. 둘러앉은 식탁에서 허기진 소통을 나누었던 '원가족'보다, 24시간 함께 밥을 먹고 함께 공부를 하며 나누었던 긴 세월 동안 울고 웃었던 배부른 추억은 그녀들에게 행복한 기억일 수 있다. 보답하고 싶었으리라.



수능을 끝낸 초겨울, 우리는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후쿠오카 숙소로 가는 휠체어 바퀴에 힘을 실어주듯 일본은 낯설지만 평온했다. 하늘 기슭에 떠도는 기러기도 선생님을 배려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새들의 호위는 짧은 여행 길 내내 쇼핑센터로 서점으로 맛집으로 막힘없이 안내했다. 문제는 잎 지는 소리에도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나의 마음인데, 여행지에서도 아파트 뒷골목을 찾아 울었던 그날처럼 두려움과 불안으로 내내 우울했다. 어쩌면 '선'의 자리로 인도하고 '행복'의 자리로 안내해야 살아가는 내가, 혼자서는 어디도 나갈 수 없는 낯선 타지, 일본 후쿠오카에서 내내 미안했으리라.



가을은 사색의 심연이다. 밤새 뒤척이며 결단해야했다. 12월 1일 겨울이 시작되는 후쿠오카는 여전히 청량했다. 막 스물을 앞두고 집이 아니어서 그냥 행복했던 제자들에게 더이상 민폐를 끼칠수는 없었다. 숙소 커튼 틈사이로 햇살이 들어오고 호위하던 새들이 노래를 불러주는 이른 새벽에 선생님을 배려하느라 선잠을 자고 있는 하은이를 깨웠다.



"하은아, 나가자...일본 골목을 느끼고 싶어..."








어찌보면 일본은 같은 아시아권이다. 주택이 다를리 없다. 하지만 후쿠오카 골목은 쓰레기도 없고 사람도 없고 심지어 냄새도 없었다. 휠체어 바퀴에 힘을 실어 달릴만도 했다. 하은이와 나는 긴 숨을 뱉어내고 느리게 느리게 산책했다.


"뭘 보고 계세요?"


"사람을 찾아..."


내 눈이 머물고 내 시야가 바뀌는 시점마다 하은이는 휠체어를 밀었다가 다시 당겨서 느끼도록 도와주었다. 어찌보면 주택 사이 사이 아름드리 나무들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똑같을 수 있다. 겨울의 입구, 후쿠오카 골목은 여전히 초록 나무들이 숨을 쉬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아니 얼마나 휠체어를 밀었을까. 사념에 취한 나를 그저 밀어주고 밀어주다 보니 고즈넉한 정서로 다가오는, 그림으로 그려서라도 간직하고 싶은 풍경을 마주했다.








젖은 골목이 말라간다. 새벽이 끝나가고 아침이 시작되는 시간, 낯선 타지까지 와서 울어야 했던 그늘을 끊어내 야할 시간이다. 결단해야 했다.


"하은아, 그동안 잘 산 걸까?"


"우리가 알잖아요..."


슬픈 문양을 그늘처럼 드리운 제자가 입꼬리에 힘을 주어 웃어 보인다.


"다 잘 될 거예요..."


너무 정갈하고 너무 깨끗하고 너무 조용한 골목 끝에서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였다.



"너무 많이 왔어요. 길을 잃을지도 몰라요"


"잃으면 찾으면 되지 뭐"


말해놓고 알았다. 변해버린 사람, 시체같이 굳어진 마음을 탓할 필요가 없다. 잃어버린 환경과 마음은 내가 찾으면 된다. 일본어 몇 마디 배우고 떠나온 여행인데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가장 예쁜 목소리로 인사하고 싶어졌다.


"오하이요 고자이마스"


어찌 보면 일본은 같은 아시아권이다. 낯선 사람이 아침 인사를 건네면 우리나라 사람들 반응은 어떨까. 휠체어에 앉아 있는 여자와 휠체어를 미는 소녀가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는데 그들은 미소로 답한다. 아,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이 몰려왔다.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애들 깨우고 편의점가서 아침 먹을까?"



비행기에서 보았던 파란 하늘빛이 골목 끝에서 펼쳐지고, 우리를 따르며 지저귀던 새들이 먼저 날아가서 앉았다. 이미 단단해진 마음은 알아볼 수 없는 간판, 낯선타지 골목에서도 새들의 호위를 따라 끝으로 끝으로 전진했다. 그곳에서 마주한 편의점,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를 찾고 있던, 갓 스무살 제자들은 이미 가장 맛있는 도시락을 데우고 있었다. 아마 그곳 편의점 이름이 패밀리 마트 였으리라. 우리는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서 배부른 추억을 만들며 웃었다. 후쿠오카 골목, 패밀리 마트는 지나가다 한번은 쳐다봐야할 유사가족을 그저 미소로 화답했다. 아름다운 기억이다.



내가 가고싶은 체코 프라하 지면은 휠체어가 다니기 어려울 정도록 울퉁불퉁하다고 한다. 내가 걸었던 대한민국 골목은 좁고 경사가 심했다. 두 바퀴정도 밖에 돌지 않았던 일본 후쿠오카 골목은 어디를 가도 균일했고 휠체어를 밀어주는 가녀린 소녀의 거친 숨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오히려 나는 휠체어 바퀴가 지나가는 곳곳마다 포효하듯 결단과 의지의 문장을 뿌려주었다.




"하은아, 기억나? 스러져가는 빈 마음에 더운 마음 심어주던 그 날 그 새벽, 기억 나? 악어의 밥에서 건져내고 강둑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준 그 날 그 골목의 더운 마음이, 강둑을 건넜던 누우떼가 평생 빚진 마음으로 누워자지 않고 거친 풀을 뜯는 것처럼 선생님은 잊지 않을 거야. 선생님은 환경과 물질을 잃은 것이 아니라, 평생 시들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얻은 거라는 것을... 잊지 않을 거야. "




제법 날이 시원하다. 곧 수능이고 곧 겨울이 오겠지. 12월 1일이면 떠오른다. 후쿠오카 골목과 그 골목을 가득 채운 갓 스무살 제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후쿠오카 골목에는 아직도 휠체어 자욱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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