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이고 싶지 않았다.
_2화, 숲에 관하여는 기사식당에서 새우잠을 잤던 자전적 이야기였습니다. 소설은 결국 나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우리의 이야기로 가는 것이니요.
날씨가 확연히 달라진 오전에 나와 너, 우리를 위한 기도를 하고 깨끗해진 마음으로 책상에 앉았는데 귀한 찬양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저는 지금 #주님의숲 이라는 찬양을 듣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제 꿈에 숲이 나왔고, 숲이 도피처였고 지성소였는지 이렇게 답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Re-Frame이라는 부제로 소설을 다시 시작함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된 진실을 재구성하고, 트라우마를 직면해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굴곡진 인생을 살았던 저에게 다가온 무수한 사람들은, 저를 성장시키고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매개체였습니다.
오늘은 Re_Frame_동시 상영 극장에 관하여.입니다.
저는 사춘기 시절에 이미 서양문학을 읽었습니다. 이론으로 접했던 성문화는 충격적이었고, 기독교라는 프레임으로 터부시했습니다. 게다가 장애인이기에 성적 미투는 무수히 많았습니다. 기도로 풀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들을 제대로 직면하고 이야기들을 모아 다시 소설을 완성하겠습니다.
"오빠, 이 극장은 왜 이름이 자유 극장일까?"
나는 의도하고 물어보거나 예견된 답을 기대하고 물어보지는 않는다. 떠오르는 대로 질문하고 답을 하지 않아도 상상의 나래를 펼 줄 아는 나는, 기사식당에서 이제 겨우 세 번 밖에 본 적이 없는 남자를 오빠라고 부르고 그 오빠와 자유극장에 갔다. 아직 스물이 되지 않은 막 열아홉 살의 그 해 겨울은 막 학력고사를 끝내고 기사식당 카운터에서 어서 오세요라고 말하고 안녕히 가세요 말해야 용돈을 받을 수 있었다. 기사식당은 기본적으로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밥 집일진대, 갓 스무 살을 넘긴 오빠는 손톱 끝까지 까만 기름때를 소유하고 있는 정비공이었다. 그때는 그 손톱으로 밥을 먹고 그 손톱으로 밥값을 내기 위해 카운터 위에 있는 내 손가락 근처로 다가올 때, 수세미로 바득 바득 지워주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영화표 있는데... 저 골목 모서리 지나서 큰 길가에 있는 자유극장 알지...?"
돈을 내고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오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 아니 어쩌면 황인종보다 흑인에 가까울 정도로 피부가 어두웠다. 회색 목 폴라를 입고 두꺼운 가죽점퍼가 까만색이니 온통 짙은 어둠의 그림자로 인식되기에 충분했다. 그때 그가 목 폴라를 내리지만 않았어도 나는 자유극장 영화표를 거들떠보지 않았을 것이다. 기름때가 가득한 손톱으로 한번 접혀있던 목 폴라를 두 번 접기 위해 폴라티를 내리자 그의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아, 황인종이구나, 어쩌면 나처럼 하얀 살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그 오빠는 얼굴색과 대비되는 목 살의 흰색으로 나의 동의를 얻어냈다. 술이 취해야 용기가 나는지, 술이 취하면 거침없이 나의 손과 나의 다리를 주물렀던 아저씨들과는 다른 접근법으로 그는 다가왔다.
"비싼 극장은 못 가... 자유 극장은 삼 천 원으로 두 편을 볼 수 있어.... 시간을 길게 낼 수 있어?... 두 편 다 같이 볼 수 있어?"
가난이 죄라고 생각했던 철없음은 문학을 접하고 시를 읽기 시작하면서 사라졌다. 오히려 한쪽으로 치우친 사랑에서 제외된 사람의 아픔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가끔은 너무 독립적으로 씩씩하게 살아가다 보면 이미 가난한 자로 보이지 않거나, 하나밖에 없는 운동화를 하얗게 빨아서 당시 유행하는 밑단이 넓어지는 청바지에 어떤 날은 노란 티셔츠로 어떤 날은 초록 티셔츠로 번갈아 입으면 화룡점정으로 엄마 루즈까지 바르면 사람들은 나를 더욱더 가난한 자로 보지 않았다. 그렇게 예쁜 내가 한 살 차이 나는 얼굴이 너무 까맣게 그을려서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정비공과 자유극장에 갔다.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 의하면 말이 느리다고 했고, 부모가 없다고 했고, 부모 없이 컸지만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세 번밖에 만나지 않았던 남자와 극장 정도 가주려면 더 많은 평가를 수집해야 했다. 술만 마시면 내가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와 술에 못 이겨 내 이불에 쓰러진 것처럼 연출했던 그래서 미안하면 만 원짜리 지폐를 큰마음 먹고 던져주고 갔던 나에게는 쓰레기였던 아저씨는 가슴이 봉긋하다 못해 티셔츠 사이로 가슴골이 보이고 목 선과 가슴 선이 구분 가지 않을 정도로 가슴이 커져가는 나에게 그 오빠의 정보를 쏟아냈다. 그래야 내 앞에서 오래 머물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눈을 뜨면 마주하는 기사식당은 바닥 마무리 공사가 덜 된 채 시작했던 그래서 바닥의 진흙이 튀어나와서 마치 해무처럼 뿌연데 그곳에 청국장 냄새와 김치찌개 냄새가 묘하게 어우러져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엄마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그 식당 한편 작은방에서 중학교를 다녔고 이제 곧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는 나는 생각했다. '남자는 다 쓰레기야...'
"유미야... 데리러 올까?"
"제가 그 곳으로 갈게요. 엄마가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카운터 볼 사람도 대체해야 하니까, 오후 4시 영화라고 했죠?"
입시 설명회가 있다고 말했다. 엄마는 입시라는 단어도 모르고 설명회도 모른다. 그냥 언제 올 거냐고 물었다. 나름 첫 번째 데이트인데, 엄마의 빨간 루즈 정도는 발라줘야 하는데, 입시 설명회의 의미는 몰라도 학교를 간다고 짐작은 할 터, 엄마 화장품 몇 개를 가방에 챙겨 넣고 나갔다. 호시탐탐 나의 살을 탐했던 쓰레기였던 그 아저씨는 술 먹기에 이른 시간부터 하필이면 그날도 어김없이 왔고, 조금은 생경하고 조금은 더 달아오른 나의 얼굴을 봤으리라.
"유미야 오늘 더 이쁘네!"
그 순간 더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아저씨의 늘 풍겼던 잔상과 니글대는 문장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엄마 화장품을 바르면, 막판까지 눈치를 보고 나와서 겨우 자유극장에 도달하는 성취감을, 그 아저씨가 말했던 문란한 느낌의 '이쁘다'와 바꿔야 할 것 같기에 나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입술을 다시 한번 손으로 문질렀다. 동시 상영 극장의 특징이 영화 관람료가 싸서 오기보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성적인 장면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는 것쯤은 알 나이다. 그래도 첫 데이트 장소가 동시 상영 극장이고 야한 영화를 보러 일부러 찾은 연인처럼 보여도 내 얼굴만큼은 대학생, 지적인 허영 가득한 교양인으로 보여야 했다. 무엇보다 쓰레기 아저씨가 탐내는 삼류 여자는 아니어야 했다. 얼굴에 발랐던 트윈케이크(그때는 그렇게 불렀다)까지 벅벅 지워버렸다.
나는 때때로 기분에 따라 사람의 형상을 다르게 볼 때가 있다. 기분이 더러운데, 그날 그 자유극장에 서 있는 갓 스무 살의 남자는 청바지에 흰 목폴라를 입고 있었고, 까만 가죽점퍼는 입지 않았다. 가볍게 걸친 외투 사이로 그의 흰색 티셔츠를 본 순간 생각 없이 엄마의 빨간 루즈를 꺼내서 발랐고, 트윈케이크 거울을 통해 여러 번 보아도 예쁘다고 느껴질 때 까지 덕지덕지 바르고 바른 후에야 그 남자 앞으로 걸어갔다.
"오빠!"
나를 바라 본 오빠 등 뒤로 오늘의 간판이 다시 걸리고 어제의 간판이 내려왔다. 어제의 간판이 앵무새가 몸으로 울었다는 보지 않아도 알 영화였고, 다시 올라간 간판은 '개 같은 내 인생' 이었다.
순간, 더 야해도 좋을 영화를 보고 싶다고 느꼈을 때, 또 다른 간판이 올라갔다. 헬로우, 크라이막스였다. 동시 상영 극장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영화에 대한 기대보다 영화가 주는 분위기 그 어두침침하고 퀴퀴한 삼류 극장에서 벌어질 나의 첫 데이트를 잔뜩 기대하고 들어갔다. 버스를 타면 맨 뒷자리가 좋은 이유를 아는가? 영화를 보면 맨 뒷자리가 좋은 이유를 아는가? 몰라도 되고 심지어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오빠의 손을 잡고 맨 뒷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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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