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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Jul 15. 2020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나의 일터.

우리 곁에서 새소리가 사라져 버린다면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팍팍하고 메마를 것인가. 새소리는 단순한 자연의 소리가 아니라 생명이 살아서 약동하는 소리를 자연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음악이다. 그런데 이 새소리가 점점 우리 곁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법정스님

자연의 생기와 화음을 대할 수 없을 때, 인간의 삶이 병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법정스님은

새들이 떠나간 숲이 적막하다고 스님의 호흡을 책에 뿌려 놓았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 밖을 여행하지 못하는 신체적 결함은 이사 갈 때마다 아파트 1층을 고집했다.

고층을 올라가지 못하는 장애가 있어서 그런가? 그렇지 않다. 엘리베이터는 존재하니 말이다.

땅의 기운을 오롯이 받아내는 1층에서 창가 가득 나무의 향기를 뿜어 대는 그 자연의 풍경을 대하며 이렇게 생각했다.

-여행 온 것 같아.

봄이면 벚꽃을 여름이면 장미꽃을 가을이면 노랗고 붉은 나뭇잎의 바스러짐을 겨울이면 눈이 소복하게 앉아 있는 정겨운 풍경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자연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는데, 새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가끔씩 보이는 참새, 그리고 까치인지 까만 새가 나뭇가지에 놀다가는 데, 왜 그 소리는 정겹지 않았을까.

집을 나가다 발견하는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을 깨듯 쓰레기통 뒤지고 있으니 이미 닭둘기가 되어있었고...

인지하지 못했다.


법정스님의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를 다시 꺼내 읽으니 이제야 알 것 같다.

빌딩 숲 가득한 ‘돈’의 기운 넘치는 그곳 1층 아파트는 조경이 잘되어 있어 아름다운 풍경이 여행을 대신하는 것 같았으나, 이제 알 것 같다.

적막했던 것이다.


눈을 뜨면 그 풍성한 조경을 가진 나뭇잎 사이에서 새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길 기대한 것은,

외롭고 적막한 마음을 새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을 통해 채우고 싶었던 것,


이제 알 것 같다.


인천 차이나타운 옆, 내가 살고 있는 관동은 빌딩도 없고 조경이 잘 되어 있는 나무들도 없다.

오래되고 방치되었지만 고개를 끝까지 올리고 봐야 하는 거칠고 큰 나무가 있고, 여기저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각각의 집에는 각각의 나무가 엉키고 설켜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새벽인지 아침인지 어둠이 걷히는 그 아스라한 시간에 이넘 저넘 꺄르륵대는 새소리가 나를 깨운다.

프로젝트로 하는 미라클 모닝도 필요 없으니 내 알람은 오전 8시로 맞춰져 있는데, 자꾸 깨운다. 인공 알람 새소리가 아니라 천연 알람 소리 새소리가 나를 깨운다.


-그래 그래 일어날게.


이미 책상 앞으로 펼쳐지는 자연의 향기는 창문을 열어젖히라고 손짓한다.

창문을 열고 나를 깨운 그 새와 조우한다. 가끔은 방충망 없는 넓은 창가로 그 새가 들어올 까, 기우에 불과한 걱정을 하면서 나의 살을 타고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에 크게 호흡을 하면서 아침을 시작한다.

그렇게 새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그 일상은 내가 책상에 앉으면 일터가 된다.


[]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10가지가 넘는 의미들이 나열되어있다.
1.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 또는  활동의 대상.
일을 마치다.

2
어떤 계획과 의도에 따라 이루려고 하는 대상.
일을 꾸미다.

3.
어떤 내용을 가진 상황이나 장면.
지난 일을 돌이켜 보다.

대부분 [일]이라는 개념을 1번에 국한시킬 것이다. 프리랜서로 살다 보면 약속을 정할 때 -일이 있어서 그 시간은 안됩니다.

이때 [일]이라는 것은 2번의 의미로 보면 된다.


그런데 더 자유로운 상담사와 작가로 살아가다 보니, 나의  [일]은 3번에 가깝다.

지난 일을 추억하면 그 추억이 어느 날은 눈물을 타고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게 하고 어느 날은 예쁜 미소 머금고 그 심장 박동 소리만큼 빠르게 노트북을 치고 있었다. 독 타로 치다 보니 [ㅈ;ㅐㅑㄱ홈랴ㅐㅗ ] 이렇게 오타 가득한지도 모르고 고개 숙이고 웃고 있다가  몇 번을 수정해야 하는데도 나는  그 [일]을 한다.

[어떤 내용을 가진 상황이나 장면]이 마구 떠올라서 미친 듯이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새소리 하나에도 10번이 넘게 이사한 집들의 1층 풍경이 떠오르고 여름인데도 신선한 공기가 살을 타고 조금은 여유로운 호흡을 만들어 내니,

나는 지난 일을 돌이켜 본다.


Having이 별 건가.

심상화가 별 건가.


지난 [일]을 상기하며 [일]을 하고 있는 나의 [일터]는 오늘도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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