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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Jul 13. 2020

저는 작가입니다.

책 쓰기의 Guru를 찾아서

“택시 기사 모집 보고 전화드렸습니다.”

“경력이 있나요?”

“아니요.”

“2종 보통 운전면허증 소지자로 1년 이상 되셨나요?”

“네, 무(無) 사고 20년입니다.”

“일단 면접 보러 오세요.”

“아... 네, 그런데 장애인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했던 것 같다. 사무적인 목소리가 다소 작위적인 연민의 목소리를 내기까지 여러 번의 한숨이 들린 것 같기도 하다.


2019년 봄, 내가 가르쳤던 10명의 고 3이 각자의 자리에서 누구는 사형선고 같은 불합격을, 누구는 불수능 탓을 하며 해외대학을, 누구는 원하지 않은 대학을 선택하는 것으로 -선생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를 퇴색시키는 불길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빌딩 숲 우거진 만큼 ‘돈’의 기운이 넘치는 곳에서 영어와 국어를 가르치는 족집게 과외선생 그리고 숙식으로 아이들을 품어 주는 엄마 역할을 햇수로 7년째 하던 그 해 봄, 불행한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라고 당당하게 살아갔던 나의 화려한 이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분양사기로 모아 두었던 돈의 무게가 가벼워졌으나, 아이들이 넘치도록 있었으니 걱정하지 않았다. 백수남편과 헤어지고 외아들 대학 등록금을 쥐어짜고 홀어머니 용돈 거하게 챙겨주면서도 미래 걱정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넘치도록 있으니 매 달 들어오는 돈의 무게가 [장애인 여자 가장]의 페르소나를 살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불길했다.

그해 봄, 잦은 폭우로 1층 창가 벚꽃 나무가 좀 빨리 진 것 같다. 혈액암을 앓고 계신 엄마가 화장실에서 넘어져서 병원에 오래 누워계시기도 했고, 성적이 오르면 과외를 계속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아이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나를 떠나가기 시작했다.

불길했다.


모바일 통장잔고가 줄어드니 휴대폰이 가벼워졌다는 농담을 건네면서  팔순 노모에게 [아직, 나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하루 이틀, 결국 꽃잎이 다 떨어진 벚꽃을 바라보며 식사를 하던 엄마는 [아이들을 더 모집해라,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냐] 잔소리하기 시작했다.


-운이 다했다

-오래 가르쳤으니 쉬어라

남의 말 쉽게 하는 지인들 보란 듯이 [전단지] 다시 뿌려도 감감무소식, 다른 직업 알아보기 위해 생전 안 해 본 이력서 남발해도 [감감무소식]

두려웠다. 온몸이 떨리고 눈 앞이 흐려졌다. 그때, 교회 권사 타이틀 내려놓고 술을 먹으면서 그 기운에 잠들다가 만났다.

와인에 취해 엉엉 울다가 빨간 와인이 하얀 이불에 떨어지는 그날 밤에 만났다.


사람은 누구나 보석처럼 빛나는 인생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차별화된 독특한 콘셉트로 그 소중한 이야기를 책 한 권에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 펜의 힘은 총이나 칼보다 강하다고 한다. 책 한 권에 잘 정리된 이야기는 엄청난 힘이 있다. 그 힘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꿀 뿐만 아니라 내 인생도 송두리째 바꾼다.-[하루 한 시간 책 쓰기 힘] BY. 이 혁백

유년기의 결핍을 목소리의 힘으로 이겨냈다. 슬플 때는 더 크게 웃는 목소리를 냈고, 가르칠 때는 명료한 목소리로 몇 시간을 설명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목소리가 주는 힘으로 아우라를 만들고 아이들을 나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런데, 나의 아이들이 한 명 두 명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닌가.

그 아픈 감정을 삶의 종말로 정의할 수 없어, 블로그에 일기처럼 자전적 소설을 연재하고 블로그 이웃들의 칭찬과 지지를 받자 나의 몸짓이 바뀌어가고 있었다.

노트북 두드리는 자세는 이미 소설가였고, 노트북 자판 타다닥 소리는 심장 박동을 격렬하게 뛰게 했다.

[그]가 보고 싶었다.

[선장]이라는 호칭으로 예비 작가들과 거친 바다를 항해한다는 [그]

부자를 만들어 준다는 guru가 있듯, 글이 아닌 책을 써서 인생을 바꿔준다는 그를 찾아가 나의 인생 스토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곡예를 부려서 현실을 설명하면 충동이 생긴다. 그 설명이 유쾌하면 믿고 싶어 진다.

왜 그럴까?

가져본 적 없고, 받아본 적 없으니 누가 마술을 부려서

-옛다, 너 가져라.

기어가면서 청소하고, 목발에 의지해 설거지를 하며, 장애인 손잡이가 달린 차를 운전하는 현실 같지 않은 비현실감 넘치는 나의 일상에 누가

-옛다, 너 가져라.

그럼 말이다. 잠시 행복한 판타지 안으로 들어가서 꿈꾼다.

[내 인생 스토리가 책이 될 수 있다고? 내가 작가가 될 수 있다고?]

그의 책을 완독하고 얻은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때 [그]를 만나러 난생처음 서울 강남을 향해 달려갔다.

서울 강남구 논현로 149길 [책인사]

나는 차에 달린 내비게이션보다,  카카0 내비를 이용하는데, 그 이유는 친절하게 설명하는 그 여자의 목소리가 달콤하다 느껴지기 때문, 그 카카0내비가

그날은 나를 무시했다는 느낌이 드는 건, 약속 시간보다 2시간 일찍 나가는, 준비된 나의 마음을 송두리 째 흔들어 놓고 -복잡하다 -어지럽다 -길이 두 갈래다 -어디가 강남이고 어디가 강북이냐! 예민해지게 했기 때문인데... 결국 나는 예정된 시간을 지나 [책인사]선장, [그]와 조우했다.


대놓고 하는 말을 좋아한다. 돌직구라고 표현해도 내 앞에서 대놓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건 아프지 않다.

‘쯧쯧쯧... 안 됐어...

‘어찌 살아간대...’

아마 이런 말은 어릴 때 들은 것 같다.

‘대단해, 여자 혼자서.. 대단해’

‘장애인인데 열심히 사네’

흘려들은 이런 말이 싫었다.

그냥 내 눈 똑바로 보고 물어보지, 칭찬을 할 거면 제대로 하지, 귀동냥으로 들은 나의 평가는 내 잠재의식 속에 [실패자]의 단어로 변질되어 있었다.

그 오기가 독기가 되어 [책쓰기 특강]을 듣는 내내  모여 앉은 사람들에서 그 흘려들은 말을 가상으로 만들어 내고, 트라우마 가득한 얼굴로 앉아있으니 독창적인 언어 따위는 나올 리가 없었다.


[그]는 말했다.

-어떤 글을 쓰고 싶나요?

-장애인 그리고 여자가 고달픈 삶을 이겨낸 감동의 글이요.

[그]가 웃었다.

-지금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건가요?

총기 가득한 [그]의 눈이 사슴 눈망울처럼 빛나 보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지는 않아요, 이미 좋은 결과물을 내고 잘 살고 있으니까요.

독창성 따위 없는 답변이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으니 당연히 책 쓰기를 포기하고 쓸쓸한 퇴장 암시하며 고개 숙인 패잔병이 되어야 할터,

“이제껏 쌓아 온 지식과 경험을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책 쓰기입니다.”

[그]의 선명한 문장들이 가슴에 안착하고, 내가 휠체어에 앉아 강연을 하고 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내 눈 앞에 시각화되기 시작했다.

나는 돈이 필요했다. 나는 그 돈을 살 수 있는 경험이 있었다.

그 날 나는 책 쓰기 강좌에 사인을 하고, 예비 작가가 되었다.



Guru [그루]는 산스크리트어로, ‘어둠을 몰아내는 자’라는 뜻인데 ‘존경해야 할 사람’이라는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사람들은 찾는다.

영적 지도자, 인생 멘토, 그리고 ‘부’를 끌어당겨주는 사람 등, 자신의 인생을 의논하기 위해 찾는 스승들이 있다.

‘스승’의 자리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나에게 멘토란, 골방에서 기도할 때 찾았던 ‘하나님’이었다. 사람에게 의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나의 불문율이었다.

지천명이 넘은 나이에 멘토가 웬 말이냐, 사춘기 아이들이 특허내고 쓰는 말처럼 -내가 알아서 한다

그런 내가 책 쓰기 Guru, [그]를 만나 제일 먼저 변한 것은 얼굴빛이었다.

통장잔고는 여전히 바닥이었고, 가르치는 학생수는 늘지 않았고, 엄마의 잔소리는 더 극에 달했지만 나의 얼굴은 화색이 돌았다.

아들은 유토피아적인 백일몽에 빠져가는 엄마를 걱정했고, [작가 나부랭이는 왜 하냐]고 작가를 폄하하는 늙은 노모는 한숨이 늘어갔다. 예비 작가로 살아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서툰 방어뿐이었다.

-기다려봐 내가 작가가 되어주겠어

-내 책이 대박 날 거니까 기다려봐

나이보다 어린, 좋은 말로 하면 감수성이 풍부한 나를, 거친 바다 위에서 조타핸들 부여잡고 목적지로 데려가는 [그], 선장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백일몽을 꿈꾸는 통장잔고 바닥인생이었을 것이다.


흔들리고 다시 일어서고 유행가 가사에 목놓아 울다가 정신 차려 글을 쓰는 그 산고의 고통이 끝나고 나는 [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 책을 출간했다.

그렇게 나는 작가가 되었다.



1859년에 [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은 ‘국가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국민을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하며, 개인적인 생활을 이렇게 저렇게 영위하라거나, 무슨 신을 섬기고 어떤 책을 읽으라거나 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했다.

선장인 [그]는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게 했다. 그 Freewriting이 쌓여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같은 모습으로 지지하고 후원해주었다.

내가 [실패자] 코스프레를 벗어나자 [그]는 말했다.

-작가님, 작가님을 보면 잔잔한 파도 위에서 두둥실 떠다니는 편안한 그림이 보여요


그때는 못했던 말을 하고 싶다.

-선장님, 제가 파도 위에서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트랜서핑(transurfing) 할 수 있던 비결은 다 선장님 덕입니다. 저는 이제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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