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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Jul 20. 2020

나의 스무 살, 여수 밤바다.

테라 마시는 권사는 오늘도 해빙합니다..

원래는 목발을 하나만 짚었습니다.

원래는 조금은 자유롭게 걸었습니다.

산을 가기도 하고,

바다를 가기도 하고.


고등학교 체육수업 수행평가 시간이었지요.

장애인은 참여하지 않아도 D를 줍니다.

비뚤어진 감정인지, 교만한 감정인지,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모르지만 자기가 짠 안무로 시험을 보는 창작 무용시간에

-저도 참여하겠습니다.

그리고 A를 받아 낸 경험은 제 인생의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나도 할 수 있다.


반장을 하고, 오락부장을 하는 리더가 주는 쾌감과

말만 하면 빵빵 웃어주는 아이들의 눈빛은 나를 더 성장시켰습니다.

그리고 책에서 썼던 스무 살의 일탈이 시작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내가 장애인이니까 무시한다는 감정이 들었던 건,

나보다 못생겼다고 생각했던 아이와 클럽을 갔을 때입니다.

당연히 목발을 짚고 있는 제가 컨택을 당할 수 없을 텐데... 그날 이후로

비뚤어진 감정인지, 교만한 감정인지,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모르지만 혼자 가기 시작했습니다.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문학책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술을 홀짝홀짝 마시니

누가 나를 컨택하더군요.

-같이 춤추실래요?

이런 제 옆에 있는 목발을 보지 못했나 봅니다.


일탈이라고 표현했던 클럽 사건 이후,

그 당시 소아마비의 천국[순천]을 알게 됩니다.

-기어가던 사람이 걸어서 나왔댜

-목발 두 개 짚던 사람이 하나만 짚고 나왔대

기사식당 일로 바쁜 엄마를 졸라 택시를 대절해서 [순천]을 갑니다.

-정미야, 진짜로 그 병원이 용하다냐?

-사람들이 그랬어. 용하대. 엄마 나 진짜 목발 없이 걷고 싶어.

-수술이 실패하면 어짜냐?



-특이한 소아마비입니다. 수술을 해도 소용이 없는데...

-왜요? 왜요? 다른 사람들은 목발 두 개면 하나를 짚고 나오고, 많이 저는 사람들은 조금 덜 전다고 하던데요?!

-오른쪽 발 기울어진 정도만 평평하게 땅을 디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도의 수술만 가능합니다.


참 많이 이야기했는데, 그 의사와 나눈 이야기 끝에 엄마는 [수술비가 그렇게 싸다냐? 하자 해!] 수술비만 들었고

나는... 해도 소용없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택시에서는 발을 뻗을 수 없으니 봉고차를 빌려온 엄마는

차 뒷좌석에서 누워가라고 편의를 봐주더군요.

그때,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아이고 따님이 노래를 잘하시네요

불구자 딸을 위해 수술을 해주었다는 안도감이 얼굴에 보였던 엄마는

-손가락도 하얗고 에쁘지요, 얼굴도 날 닮아 예쁘지요,

스무 살이 되어서야 나는 존재감 있는 막내딸이 되어갑니다.


트로트를 연달아 부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던  엄마는 본인의 감정도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나 봅니다.

시대의 아픔으로 만들어진 내가 목발 없이 걸을 그 상상을 했을 수도 있겠지요.

식당 걱정을 뒤로하고 여기까지 왔으니 [여수 바다]를 보러 가자고 제안하시네요.


검정 봉지에 한 움큼이나 토해낸 멀미의 흔적을 바다에 던지고 그 어스름한 노을의 잔해를 보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잊힌 기억을 되살리는 버스커 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처음 접하고

내가 치른 의식은 한 움큼의 눈물 수액이었습니다.

나에게 있어 [여수 밤바다]는 [순천 병원]을 떠올리는 매개체이니.


이쯤에서 궁금하지요?

책을 읽으신 분들은 제가 목발을 두 개 짚는 것을 알고 있고, 블로그 친구나 작가 친구들도 제가 목발을 두 개 짚는 것을 아니요.

네...

수술 이후로

산을 가기 어려워졌고

바다를 가기 어려워졌고

더 둔하게 걷게 되었지요.

오른쪽으로 심하게 꺾이던 오른쪽 발바닥만 평평하게 땅을 디디는... 정확히 의사의 말대로 됐지요.

그때부터 몸이 아프면 [벌 받는다]는 기복신앙이 자리 잡혀가니

하나님과 독대하는 것이 어렵더라고요.


오늘, 여행 후유증으로 입술이 부은 모습을 보고 [하나님, 잘못했어요]

그러고 있는 저를 발견했네요.

[테라 마시는 권사]라고 당당했다가도 어딘가 아프면 [엄마 잘못했어요]처럼

[하나님 잘못했어요]

그리고 노트북을 펼쳤습니다.

더 뽑아내자.

스무 살, 그리고 지금

숨겨진 이야기, 아픈 이야기 더 뽑아내자

테라를 마시면서도 성경을 암송하고 그 암송한 실력으로 교회에서 1등을 하고,

감사가 넘쳐서 행복합니다. 외쳐도

혼자 있는 사람이 몸이 아프면 찾아온다는 그 쓸쓸함이 저에게는 글을 쏟아내게 합니다.



입술이 부었다는 짧은 글에도 비타민을 손수 시켜주는 지인이 있습니다.

건강식을 챙겨주는 친구가 있습니다. 뜻밖의 선물을 안고 멀리서 찾아와 주기도 합니다.

해빙하고 감사하고 심상화하면 이 모든 것이 [주의 은혜] 맞습니다.

잠시 아프다는 이유로 누워 있기 싫었습니다.

장범준의 여수 밤바다를 블루투스에 걸어봅니다.

찔레꽃을 불러봅니다.


이제 나의 스무 살이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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