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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Jul 25. 2020

취미가 뭐예요?

한 우물을 파라니요.

보헤미안 랩소디를 기억한다.


수많은 관중으로 나아가는 계단을 오르는 프레디 머큐리 역의 라미 말렉은 청바지 안으로 하얀 민소매 티셔츠를 허리춤 안으로 끝까지 집어넣은

그 만의 스타일을 선보이며 무대에 오르기 직전 마이크를 들고 콩콩 뛰듯 계단을 올라, 이미 가슴이 터질듯한 함성이 가득한 관객들을 맞이한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3번이나 봤는데, 그 어떤 장면보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의 그의 호흡의 의식만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목발 한 개를 짚고 서있던 나의 모습을 병치시켜봤다.

담다디로 유명한 이상은 가수를 배출한 1988년 강변가요제 예심,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

예심을 통과하고도 미흡한 걸음이 주는 제약에 -의자에 앉아서 부르세요! 스텝의 목소리가 분주했다.

그 목소리의 짜증은 무대를 오르기 위해 계단을 뛰어 넘나드는 참가자로 자연스럽게 나의 시선이 옮겨졌고... 결국 나는 본선에 나가지 않았다.


코인(coin) 노래방-동전이나 지폐를 넣어  금액에 해당하는 만큼 노래를 부르도록 장치를  놓은 .

가수가 꿈은 아니었다. 노래가 좋을 뿐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한풀이는 노래방 마이크를 붙잡고 탬버린을 흔드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기, -어디냐? -코. 노요

코인 노래방을 줄여서 그렇게 말하는 것인데, 아이들이 코. 노에서 무엇을 하냐 하면., 한풀이를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 집에서 받은 스트레스, 그리고 이렇게도 말한다.

-선생님, 그냥 우울해요

그냥은 없다. 심리상담을 하고 있는 나에게 그냥 우울함이란 없다.

우리나라처럼 노래를 사랑하는 민족은 드문데, 노래를 하면서 억압해 놓은 색깔 없는 억울함, 분노, 우울함, 외로움이 목젖을 타고 분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노래하고 싶다고 할 때는 부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욕하고 소리 지르고 싸우는 것보다 낫다.


그렇게 나는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참 다양한 노래를 불렀다.

미도와 파라솔의 [밤이 깊었네]을 부르며 머리를 좌, 우로 까딱거리다가 조금 더 강한 텐션으로 어깨까지 흔들고 싶으면 크라잉 넛의 [밤이 깊었네]를 부른다.

극도의 우울함으로 심연의 깊이까지 가서 엉엉 울고 싶을 때는 세상 슬픈 발라드를 여러 개 걸어 놓고 그냥 운다.

kcm의 [버릇처럼 셋을 센다]는 소설을 쓸 때 수 백번 들었다. 현실성이 반영되고 다소 센 글을 쓰는 내가 세상 달달한 로맨스 소설을 쓸 때는

이상형 임영웅의 [미워요]를 걸어놓고 썼다.

그리고 제자들이 놀러 오면 그들이 좋아하는 랩들을 걸어놓고 라임에 맞는 래퍼의 운율에 따라 말장난을 걸어보기도 한다.

-요즘 뭐하심?

-알바하심

문제는 좋아하는 노래의 장르가 다양한 것처럼, 나는 취미가 꽤 다양하다.

그림을 혼자 배울 때, 수채화, 일러스트, 유화를 다 섭렵했다. 깊이가 없으니 전문가 수준으로 칭송을 받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림을 선물하고 그들이 기뻐할 만한 수준은 되니 나는 만족인데... 나를 지켜보는 엄마는 한숨과 함께 잔소리를 퍼부었다.

-한 우물을 파라. 너는 공부할 때도 국어 했다가 영어 했다가 그러더니 그림도 이거 했다가 저거 하냐?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났던 엄마의 날카로운 지적에 그때는 답을 못했다.

색깔 없는 공허함에 제자들을 데리고 코인 노래방으로 도피하는 것으로 엄마와 부딪히는 횟수를 줄일 뿐이었다.


심리상담과정을 공부하고 에니어그램 전문가가 되면서 나는 알았다.

나 다운 것은 없다.

정의 내리는 그 자체가 세상의 초록을, 푸르름을 오롯이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림을 다양하게 그려도 되고, 좋아하는 노래의 장르가 다양해도 되고, 다른 사람과 달리 독특한 옷을 입어도 되며, 국어 공부했다가 영어공부를 해도 된다.

한 우물을 파지 않아도 된다.

태생대로 살기를.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기를.

제약을 두는 누군가가 있다면 맞대응하고 싸우지 말기를, 그는 영원히 당신 편이 아니니,

그 시간에 하고 싶은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내면을 풍성하게 채우고 살기를..

나 다운 것은 없다.


취미가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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