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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Jul 28. 2020

Addiction

중독에 관하여.

열정을 한자로 풀이하면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하지만 에니어그램에서 열정은 Deadly Sins를 가리킨다. 자신의 중심을 잃어버리고 사고, 감정, 행동 안에서 왜곡된 방식을 일삼으니 치명적인 죄라고 표현한다.

내면 여행을 하고 뿌리 탐색을 하면, 긍정어로 알고 있는 단어들이 부정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 그렇게 무언가를 쫓고, 하고, 나누고 싶었을까?


에니어그램 7번이 뿌리로 형성되는 배경은 [엄마]로부터의 감정적 격리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엄마~~]라고 부르는 시그널이 [왜~~]라고 똑같이 오는 환경에서 자란다면 아이들은 가장 무난한 9번 유형으로 성장하는 데

7번 유형은 여러 가지 감정의 시그널을 보내도 돌아오는 응답은 [저리 가있어] [그래서?] 아니면 응답이 없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유형이... 7번이다.

그래서 늘 들떠있고 즐겁게 해주는 것으로 보상을 얻고자 한다.

흥미로운 것을 만들어 냄으로 생존의 전략을 만들며  이상화와 상상의 세계를 시나리오화 하면서 삶과 인간관계의 실제적인 면들과 격리되는 것이다.

이렇게 건강하지 않은 7번 유형은 폭음, 폭식, 게임중독, 공부 중독., 커피 중독... 뭐든 중독 성향이 강하다.



오목으로 여성부 1위를 하고, 연하의 남자 친구와 헤어지자 세상이 암흑으로 변했다.

그때, 교회를 등지고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찾은 곳은 또다시 가상의 세계였다.

이미 [의처증] 증세를 보이던 남편은 노름하러 나가는 대신, 내 뒷자리에서 다른 컴퓨터로 바둑을 하는, 그래서 내가 움직이는 경로를 다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치도록 파고들어간 게임이 있었다. 골프게임 [팡야]

잠재되어 있는 운동신경은 모든 구기종목 스포츠에 열광하게 했고 특히 골프는 나에게 해보고 싶은 스포츠, 그래서일까? 박나래가 요즘 박세리를 보면서 [리치 리치 부자 언니]를 말하며 혀를 굴릴 때, 해맑게 웃는 박세리가 너무 예뻤다. 그 박세리가 활동했던 시기에 여러 번 돌려보기를 했던 그 골프를 나는 게임을 통해 해소했던 것이다.

컴퓨터 화면에 각도기 모양을 붙여놓고 정확하게 각도와 거리를 환산하고 공중으로 샷을 날리며,

땅의 기울기를 계산하고 거리를 정확히 잰 다음에 구멍을 향해 퍼트를 치는,

그러다 티 그라운드에서 1타로 홀에 들어가는 홀인원이라도 하면,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남편을 의식하지 못한 채 소리를 질렀다.


7번 유형의 내면의 아이는 사랑을 표현해도 아무도 그것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시작할 때, 원래 가지고 있는 부드럽고 사랑스럽고 영적인 어린아이가 잊혀지게 된다.

나는 그렇게 내면의 아이를 잊은 채 남편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아들을 방치했다.

아들이 보내는 [엄마~~]라는 시그널과 [아파요...]라는 시그널을 무시하고 누군가를 투사하고 게임을 하는 이유를 합리화했다.

그렇게 긴 시간을 방황할 때

-엄마, 이제 다시.. 교회 나가면 안 돼요?

아들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가 미안해...


가상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오며 맥주 없으면 잠을 못 자는 암흑기에서 고사리 같은 아들 손을 잡으며 다시 교회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게임 중독을 해결할 때, -제가 게임을 하면 토하게 해 주세요 라는 원초적인 기도가 지금도 게임을 보거나 아이들과 잠시라도 게임을 하게 되면 울렁증이 난다.

어떤 식으로든 입을 통해 나간 기도는 늘 응답이 되어 돌아왔다.


그러나,

남편과 아이와 다시 시작한 성전의 삶이 회복된 삶이며, 기도로 토로하는 삶이 행복할 것이라고 주입하듯 살아가는 방식은 밤만 되면 다시 공허했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나의 삶이 무언가를 추구하고 쫓고 쫓기는 삶이니, 오롯이 맡기지 못하는 삶이니 여전히 외롭고 공허했던 것이다.


그리고 책을 냈다.

그리고 다시 추구하고 쫓고 쫓기는 삶을 살고

그리고 지금은 병원이다.



​솔직한 글을 쏟아내면서 다짐해본다.

섬세한 내면의 감정에서 도망치지 않고
그것을 직면하고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귀 기울여 들을 때
가슴의 고요함 속으로 들어가 내면의 신성한 속삭임을 듣자.

그래야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어린아이의 웃음이 내면을 타고 들려올 것이다.


시간이 멈춘 병원에서 글을 쓰면서 다짐한다.

중심을 잡자.

그리고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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