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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Aug 04. 2020

은밀한 이야기 ep 3.

그대는 결국 지독한 꼰대였군요.

-내 말이 다 맞아.

-내 말대로 하라고.

잠시 무서웠다.

어릴 적 아버지가 위에서 나를 지켜보면서 하는 말이며,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말만 번드르르한 말이어서

아이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꼰대]가 떠올랐다.

일반적인 [꼰대]의 정의는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일반적인 어른을 비하하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녀를 통해 듣게 되는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던 일반적인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말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꼰대와 접목하여 풀어가는 이유는 한 가지이다.

그 꼰대가 본인이 완벽하다는 것을 가장하여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지론은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 그녀의 아픈 이야기와 젠틀맨을 가장한 꼰대였던 그 남자의 이야기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선생님, 목사님이 참 친절해요. 예배가 끝나고 한 명씩 손을 잡고 악수를 할 때, 목사님의 체온이 아버지 같았어요.

-그랬군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따로 부르기 시작했어요

-기도를 부탁했나요?

-아니요., 저에게만 하는 말이라고... 늘 그랬어요 저에게만 하는 말이라고... 그런데 그 비밀 이야기가 이상해요.

  너무 나직하고 목사님 말을 듣게 되면 이상하게 힘이 빠지고...

-아...

-목사님과 자주 만나다 보니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는 말과 다른 것을 느꼈어요.

-뭔가요?

-자꾸 저에게만 하는 말이라고 그리고 자기 말을 믿으라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게 아니라 자기 말을 들으라고...


여기까지 들으면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오는 성추행을 했던 목사님의 일반적인 단계와 비슷하다.

이렇게 일대일 만남에서 성경적이지 않은 말로 [자기 말]이 맞다고 주입하는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장시간 이야기하는 것을 [그루밍]이라고 한다.

Grooming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드는 등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것을 뜻한다. 보통 어린이나 청소년 등 미성년자를 정신적으로 길들인 뒤 이뤄지는데, 그루밍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 당시에는 자신이 성범죄의 대상이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그루밍(grooming)'은 마부(groom)가 말을 빗질하고 목욕시켜 말끔하게 꾸민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원래 동물의 털 손질, 몸단장, 차림새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사람이 사람을 세뇌시키는 말 또는 계속적으로 호의를 베풀어 마음을 여는 도구로도 사용된다.


-어느 날이었어요... 목사님이 손을 잡고 이야기를 할 때 아득한 꿈나라로 들어가듯 너무 편안하다가 목사님이 허벅지를 만질 때 깼어요.

-뿌리쳤다는 건가요?

-네.

여기까지 들으면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성도를 성추행한 목사의 이야기로 들린다.

그녀는 말이다.

목사의 그루밍을 이겨낸 그 상황을 털어놓기 위해 나를 찾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살면서 이상하게 [그루밍]에 약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화를 냈어요.

-과장이요?

-네

보고서를 들고 들어가면 완벽하지 않은 보고서의 [흠]을 잡고 [꼰대]의 모습으로 보고서를 던졌다고 했다.

-근데요... 박 과장님이 어느 날부터 바뀌는 거예요.

-어떻게요?

-[흠이 없는 보고서라고 칭찬하면서 가까이 다가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의 장점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장점이요?

몰랐는데 새롭게 알았다는 그녀의 장점은 외모부터 보고서 작성 실력까지 어느 날은 입고 온 옷의 패션 지적 까지.,  그녀에게 있어  칭찬일색인 그의 말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똑똑했다.

미간이 찡그린 채로 미소를 짓고 말하는,  이미 본인의 패션이 엉망인 것을 알고, 이미 보고서에 미흡함을 알고 있었기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칭찬을 하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는 그의 손길이 [그루밍]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입만 웃고 있는 그의 메시지가 이중 메시지라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아빠가 그랬어요. 엄마와 다투고 심지어 엄마를 때리고 저에게 왔어요.

-뭐라고 하던가요?

-나에게만 이야기하는 거라고... 엄마가 돈 낭비가 심해서

-돈 낭비가 심하다고 때리나요?

-어느 날은 엄마가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고

아버님은 왜 00 씨에게 그 이야기를 했을 까요?

-아빠는 자기편을 만들려고 한 거예요. 근데요.. 너무 나지막해요 목소리 가요... 멋있게 이야기해요

-그래서요.

-그때는 엄마가 미웠어요 아빠가 불쌍했어요.

-엄마가 잘 못해서 맞는 거라고 생각하신 거군요.

-네.. 심지어 아빠가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했어요. 엄마 때문에 힘들다고요

-그렇다면 이제는 아버님이 문제가 있어서 저에게 고백하는 건가요?

-네... 스무 살이 되어서 알았아요. 엄마와 여행을 가서 알았어요. 아빠의 이중적인 모습을...

-엄마의 이야기도 일방적이지 않을까요?

-엄마가 녹음한 것을 들려줬어요.

-아..

본인이 바람을 피우고 엄마에게 투사를 하며, 본인의 결점을 커버하기 위해 엄마에게 뒤집어 쓰이는 민낯이 보이는 대화, 엄마의  유도로 녹음이 되는 벌거벗어지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녀의 입을 통해서 들었을 때 무서웠다.


-지금은 그래서 아버지와는...

-같이 살지 않아요... 문제는 살아가면서 너무도 많은 남자들의 그루밍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그 남자들과 함께하고 싶지 않다는 건가요?

-그 앞에서 똑바로 말하고 싶은 거예요.

-뭐라고요

-너나 잘하라고...

웃을 수 없었다. 그녀가 뱉어내는 이야기가 무거워서 웃을 수 없었다. 권위자의 자리에서, 갑의 자리에서 그 지위를 이용하여

[내 말이 맞으니 나를 따르라]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어느 날은 [ 내가 문제인가 보다] 죄의식을 주고, [너의 능력치의 부스러기를 받아 누려야 하는 처지]에 비굴해지며

어느 날은 [그루밍]이 되어 그의 편에 기대게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건가요?

-홀로서기요. 엄마도 아빠도 과장도 목사도 그 누구도 아닌... 제 목소리에 를 기울이고 싶은 거예요...


-아직도 가장 힘든 것은 뭔가요?

-그루밍보다 힘든 건.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말하는 남자들의 입술이에요

-입술이요?

-저는 그 입술이 손가락으로 보여요?

-손가락이요?

-네... 너 똑바로 살아라 지적질하는 손가락이요...



무거운 주제다.

웃을 수 없는 이 이야기를 끄집어내면서 나 또한 수많은 [그루밍]에 살고 있는 있는 건 아닌지...


마지막 상담할 때 그녀는 말했다.

-선생님, 이겨볼게요 사회생활하면서 수많은 이중 메시지를 분별해볼게요. 내 손을 잡아주는 느낌이 따뜻함인지 꼰대를 가장한 권위자인지 구별해 볼게요.


나는 그때 가볍게 조언했다.

-00 씨가 웅덩이에 빠질 때 위에서 올라오라고 말하는 사람인지, 웅덩이 밑으로  뛰어내려 가는 사람인지는... 시간이 알려줄 거예요.

  00 씨가 무너져 내리는 터널에 갇혔을 때 빠져나오라고 소리치는 사람인지 그 터널에 같이 있어 줄 사람인지는... 시간이 알려줄 거예요.

  지치지 말고 이겨내요.. 그 시간만큼 제가 옆에 있어줄게요. 다 들어드릴게요...

https://youtu.be/ogmWwZ-X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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