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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Aug 06. 2020

은밀한 이야기 ep 4.

컴퓨터 모니터는 죄가 없잖아.

아장아장 서툴게 걸어가는 아이가 엄마를 보고 웃는다. [까르륵까르륵]

알고 웃는 것일까.

엄마는 그 아이의 웃음에 반응한다.

[그래쪄 그래쪄]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아이를 이해한다.

말하지 않아도 아이는 엄마를 좋아한다.

이렇게만 커라, 세상 모든 것을 줄 것이니 이렇게만 커다오

그런데, 그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사춘기가 오니, 엄마를 보고 웃지를 않는다.

친구와 카톡을 하면서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꺄르륵 꺄르륵] 웃다가도 엄마만 보면 정색을 한다.

엄마는 아이 방문 앞에서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몇 가지 말을 고민해 본다.

[밥은?][숙제는?][아니지... 뭐 필요한 거는 없어?] 수 십 개의 가설을 세우고 겨우 방문을 열면 아이는 말한다.

-아, 노크하고 들어와!

세상에 엄마가 아이 방을 들어가는 데 노크를 하라니... 엄마는 화가 난다.

-너 또 게임하지! 숙제는 하고 하는 거야?!

-아 내가 알아서 한다고!

이렇게 밀쳐내어버려 진 엄마는 아이 방 앞에서 속으로 운다. 그리고 세상을 잃어버린 마음으로 이렇게 속말을 한다.

[아... 지 아빠를 닮았어]

혼자라고 생각이 들고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한 엄마는 그 공허함을 mom cafe에서 푼다.


여기까지 보면, 시간이 흐르면 되는 아주 자연스러운 사춘기 앓이인데 문제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 아이의 방문만큼 그 단절의 시간이 길어지면 아이 문제가 부부의 문제가 되고 부부의 문제가 다시 자녀에게 투사가 되고, 게임으로 도피하는 아이는 이제 방문을 걸어 잠그거나, 피시방을 전전하며 늦게 들어온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부부가 인내하면 된다. 언제까지? 스무 살 까지...


그런데 나를 찾아온 부부의 얼굴이 너무 어두웠다.

입구부터 아이는 소리쳤다.

-이런 데, 안 온다 했지!

엄마는 간절하다.

-한 번만...

아빠는 짜증이 났다.

-네가 한 짓을 생각해봐!

시작부터 무겁게 가라앉은 상담실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00야, 선생님은 말이야. 롤을 알아... 선생님은 말이야 배그를 알아. 그리고 예전에는 게임을 잘해서 길드 모임도 가졌고, 오프라인 대회에서 1등도 했어.

League of Legends, 약칭:LoL

미국 라이엇 게임즈(Riot Games)에서 개발한 게임으로, 2009년 10월부터 서비스가 시작됐고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1월 정식 출시됐다. 10명이 5명씩 팀을 이루어 상대팀과 싸우는 대전 게임으로, 사용자들이 직접 캐릭터를 선택해 상대방 진영을 초토화시켜야 게임이 끝난다.
Battleground

최대 100명이 고립된 지역에서 탑승물, 무기 등을 활용해 최후의 1인(또는 1팀)이 되기 위해 싸우는 비디오 게임으로, 블루홀이 개발했다. 정식 명칭은 ‘플레이어언노운즈 배틀그라운드(PUBG: PlayerUnknown’s Battlegrounds)’이고 흔히  배틀그라운드라고 부른다.

아이의 기울기가 바뀌었다. 내 쪽으로 몸을 틀고 앉은 아이는 이미 나를 신뢰하는 눈빛을 보였다.


대화의 단절은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방법을 모르니 게임만 하는 아이를 방치해야 하는가?

부모들은 게임을 덜 하게 하려고 노력을 한다.

여행을 같이 가기도 하고, 외식을 하기도 하고, 겨우 하루 쉬는 주말을 이용해 아이와 놀아주기도 한다.

-안 해본 게 없어요... 아이를 위해서

심호흡을 하고 말씀드렸다.

-안 해본 것은 없지만 오래 해보지는 않았죠...?

-저도 할 일이 있고 바쁘니 노력하는 부모를 좀 봐줘야 하지 않나요?

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말씀드렸다.

-이미 아이는 부모님을 보고 있었어요. 아주 오랫동안...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만 본다. 특히 아들은 아빠를, 딸은 엄마를 더 많이 본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미러링(mirroring)이다.

게임만 하는 아이의 기저를 보면, 아이는 이미 어려서부터 외로웠을 것이다.

엄마를 부르는 긴 시그널에 엄마의 대물림되는 성격으로 대답을 안 하거나, 짧게 대답을 하면 아이는 가슴에 담는다. 아빠의 빈자리가 클수록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보고 엄마의 행동을 본다. 그리고 엄마의 한숨과 우울한 얼굴을 가슴에 담는다.

본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막연하고 모호한 가정의 분위기에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기를 인정하고 바로 반응해주는 온라인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선생님 이놈이요. 아빠가 들어오는데 나와서 인사도 안 해요.

-들어오는 걸 못 느꼈다고!

-선생님 이놈이요 아빠가 방문을 열고 인사 안 하냐 그러니까 고개만 까딱 거리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다고 모니터를 깨?!


듣고만 있던 엄마가 용기를 내서 조용히 말한다.

-그러게.. 그건 자기가 잘 못했어...

-내가 오죽했으면, 어어! 내가 오죽했으면...


나는 지금 드라마 장면을 시연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은밀한 상담실에 뿌려지는 그 호흡 그대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아버님, 늦지 않았어요. 이렇게 찾아온 것이 시작이에요. 저는 벌써 기쁜데요.

-상담으로 게임 중독이 해결된다는 건가요?

-아들은 게임 중독이 아니에요. 가상의 공간에서 자기의 능력을 인정받는 그래서... 다음 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지혜로운 아이예요.

아이가 기울기를 완전히 바꿨다. 자기를 지지하는 상담사의 말에  눈이 촉촉해졌다.

-아빠가 모니터를 깼을 때 기분이 어땠어?

-나를 때리는 거 같았어요. 사실... 평상시에도 손을 들고 때릴 까 말 까 망설일 때 겁이 났는데...

-그래! 아빠는 너를 때리지도 않았어.

아이는 말했다. 이미 여러 번 맞은 것 같다고...

엄마와 다투고 각 방을 쓸 때도 가슴이 멍들었고, 각자 자기의 방식으로 하소연할 때도 혼란스러워서 잠이 안 왔다고 고백했다.

의외였을까. 키만 자란 것이 아니라 마음도 크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일까,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아들의 마음을 들어서 일까.

엄마가 먼저 울었다.


항변할 수 있다.

-선생님, 다 이렇게 살아요. 부모의 역할도 한계가 있다고요.

-그럼, 저에게 오신 이유는요?

먹먹한 목소리로 아빠가 말했다.

-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게임이 아니어도 할 게 많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맞아요, 게임이 아니어도 할 게 많아요. 이제 다시 시작합시다.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시작이 아니다. 아이 앞에서 아빠의 가족사를 엄마의 아픈 이야기를 진짜 감정으로 고백하는 것이 시작이다.

-아빠도 게임 좋아했어... 아빠가 참 어렵게 자랐어... 아빠의 아버지는 술을 드시면 그렇게 아빠를 때렸어... 그래서 아빠는 폭력이 싫어...

-엄마는 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셨어 너도 알지? 외할머니가 병치레가 길었잖아... 그래서 엄마 마음대로 한 게 별로 없어.

-말해주지..

-말했잖아?

-그건 싸울 때마다 말한 거지, 아빠는 말이야, 엄마는 말이야, 이렇게 시작하니 듣기 싫었지.


시작은 그렇다. 아이의 말에 그랬구나... 나도 그랬어

중간도 그렇다. 하고 싶은 말을 느리게 해야 하는 것이다. 빠른 호흡으로는 아이뿐만 아니라 그 누구의 마음도 열 수 없다는 것이다.

끝이 그렇다. 오래오래 대화를 하면 아빠의 역사가 보이고 엄마의 역사가 보이니, 아이는 이해한다. 부모도 힘들구나...

-모니터 바꿔 줄까?

-응 아빠 고마워, 그런데 이제 오래 하지는 않을게...

아빠는 느리게 말한다.

-아빠는 네가 아빠가 회사에서 올 때 인사하고 게임했으면 좋겠어....

-엄마는 내가 알아서 할게... 그 말이 듣기가 힘들어.

-진짜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는데?

-밥도 알아서 먹을 수 있어? 빨래도 네가 할 수 있어? 학교 일정을 알아서 다 소화할 수 있어?

어머니... 워... 워...


5회의 상담이 끝나고 아이는 나와 그림을 그린다. 그림이 완벽하다고 칭찬한 적은 없다.

-표현이 정확해! 오늘은 파란색이 잔뜩 있네. 00 마음이 푸릇푸릇하구먼.

-네, 오늘 기분이 그래서요...

-맞았어. 그림은 똑같이 그리고 완벽하게 그리는 게 아니야. 너의 마음을 표현하는 거지 힘들면 까맣게 칠해도 돼.

-저는 힘들 때 빨갛게 그릴 건대요.

-어?... 어?... 그래..

어느 날은 아이가 빨간 맛을 가지고 오고, 어느 날은 아이가 노란 맛을 가지고 온다.

나는 그 아이의 맛을 인정해주면 된다.

-아이고... 오늘은 잡탕 맛이구나!


아이의 맛이 익어간다.


https://youtu.be/WyiIGEHQP8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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